문 닫을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알림이 울린다. “도쿄에서 포스터 한 장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잠시 뒤, 리야드에서 굿즈 세트 문의가 날아온다. 당신은 서울 망원동의 작은 카페이자 굿즈 숍을 운영한다. 오늘은 오프라인 매대를 정리하고 노트북을 펼쳐, 메타버스 안에 만들어 둔 ‘밤샘 팝업 스토어’에 접속해 둔 상태다. 화면 속 벽보는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언어가 바뀌고, AI 점원은 손님의 아바타 얼굴을 보고 “안녕하세요, 방금 나온 민트 라떼 스티커가 인기예요”라고 말한다. 그 점원이 바로 당신의 GPT다. 좋은 인사말을 배우고, 팔리지 않는 상품은 더 추천하지 않으며, 댓글에서 튀어나온 팬들의 농담까지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 주말 이벤트 문구로 써먹는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이건 이미 골목상권의 문턱에 다가와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전 세계 한류 팬이 2억2천5백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그 거대한 물결이 시간대와 국경을 넘어 즉시 얽히는 길, 누군가는 디지털 실크로드라 부르는 그 길에서 우리는 “한류 4.0”이라는 바람을 맞고 있다.

예전에는 방송 편성표를 타고 한국 문화가 흘렀다면, 이제는 당신의 매대 위 스티커 하나가, 익숙한 포스터 한 장이, 메타버스 거리의 전광판을 타고 지구 반대편 사람의 손바닥으로 직행한다. 대기업의 거대한 물류시스템이 없어도, 중요한 건 이야기·관계·경험이 결합된 작고 촘촘한 상점의 세계관이다. 여기서 GPT는 레시피이자 집사다. 고객이 남긴 수만 개의 말풍선에서 진심을 추려 제품 설명을 다시 쓰고, 재고와 배송 공지를 손님의 언어로 바꿔 띄워 준다. 굿즈 뒤에 얽힌 뒷이야기를 짧은 만화로 뽑아 보여주고, 픽셀 거리에서 열리는 미니 쇼케이스의 사회까지 본다. “아라베스크 패턴이 들어간 버전이 있나요?”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AI 점원은 당신이 허락한 패턴만 조합해 즉석에서 시안을 만든다. 손님은 자신의 아바타에 그 시안을 붙여보고, 마음에 들면 결제한다. 오프라인에서라면 인쇄소 견적부터 받아야 했을 일을, 밤 11시의 당신은 채팅창 한 줄로 처리한다. 중요한 건 이 모든 흐름이 당신의 세계관—당신 가게만의 작은 우주—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메타버스가 거대한 테마파크처럼만 보이면 겁이 난다.

입장료는 싸지만 노출과 규칙은 플랫폼이 정한다. 과거의 ‘유토피아’가 완성되는 순간 권력의 구조가 된다는 말을 떠올려 보자. 잘 만든 공간도 소유와 통제가 뒤섞이는 순간, 상인에게는 수수료와 알고리즘의 벽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소상공인의 메타버스 전략은 화려한 성벽을 올리는 일이 아니라, 쉽게 옮겨 다닐 수 있는 장터를 여러 개 마련하는 일이어야 한다. 당신의 GPT는 그 장터를 관통하는 길잡이다. 어디에서든 같은 목소리로 손님을 맞고, 같은 방식으로 주문을 도우며, 데이터는 당신 쪽 금고—즉, 고객 명부와 스토리 아카이브—에 쌓이도록 설계한다. 한류는 이제 팬덤의 총량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함께 만든다’는 감각이 진짜 상품이 됐다. 팬은 가게의 손님이면서, 동시에 디자이너이자 홍보팀이 된다.

당신의 GPT는 이 협업의 워크플로를 관리한다. 새 포스터 콘셉트를 열어두고, 일본·사우디·멕시코 손님들에게 각각 다른 언어로 투표와 코멘트 폼을 발송한다. 밤새 모인 의견을 아침에 요약해 당신에게 건넨다. “별 형태는 국가별로 선호가 갈렸는데, 공통으로 ‘네온 블루’가 가장 반응이 좋았습니다. 오늘은 네온 블루 변주 두 가지를 추천합니다.” 시장조사 보고서를 사흘 만에 받던 시절과는 다르다. 당신의 가게는 팬덤과 함께 매일 작게 피벗하며, 실패의 비용은 점점 더 가벼워진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유혹도 많다. 클릭을 부르는 자극적인 썸네일, 묻지 마 할인, 과도한 개인화가 가져오는 피로, 그리고 스포일러처럼 앞질러 버리는 AI 자동응답. 골목의 장사는 결국 얼굴과 손맛으로 성립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GPT가 답을 대신해 줄수록, 당신은 무엇을 직접 말할지 더 신중해져야 한다. 가령 첫 구매 고객에게 자동으로 보내는 감사 편지. 보통은 ‘구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장이겠지만, 당신의 가게라면 “다음 번엔 포스터 뒷면을 살짝 비워둘게요. 당신만의 한 줄을 쓰라고요”라며 참여를 청할 수 있다. 그 한 줄이 쌓이면, 메타버스의 벽면 전체가 손님들의 문장으로 빛난다. 이건 알고리즘이 복제하기 어려운 온도다. 공간의 설계도 중요하다. 메타버스는 사실 거대한 복도에 가깝다.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지나가고, 아주 잠깐 멈춘다.

그래서 입구에서 7초 안에 세계관을 보여줘야 한다. 입간판 문구, 배경음, 조명, 그리고 첫 대화. GPT에게 “첫 30자 소개를 하루에 한 번 바꿔 보자”고 미션을 주어라. 어떤 문장이 체류 시간을 가장 길게 늘리는지, 어떤 조합이 구매로 이어지는지 매일 쿠키처럼 실험한다. 실험이 쌓이면 그 자체가 브랜드의 축적이 된다. 오프라인 간판을 바꾸는 건 큰일이지만, 디지털 간판은 매일 바꿀 수 있다. 다만 잦은 변화 속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장치—로고의 온도, 말투, 색 조합—는 반드시 고정해 둔다. 변화 안의 고정점이 신뢰를 만든다. 콘텐츠는 더 이상 보조 메뉴가 아니다.

당신이 올린 1분짜리 작업 영상은 외국 팬에게는 마치 현지 체험학습 같다. 여기서 GPT는 통역을 넘어 이야기의 편집자가 된다. 댓글에서 나온 질문을 묶어 Q\&A를 만들고, 그중 반응이 좋았던 질문들을 공연 대본처럼 엮어 다음 영상의 흐름을 짜 준다. 메타버스 안에서는 이 Q\&A가 대화형 전시가 된다. 벽에 걸린 포스터를 클릭하면, “이 질감은 종로의 작은 인쇄소에서 나왔어요. 장인 김 사장님은 잉크 냄새를 ‘바다 냄새’라고 불러요” 같은 뒷담화를 들려준다. 팬은 상품을 사는 게 아니라, 장인의 시간을 사는 기분을 느낀다. 결제와 배송은 현실의 벽이다. 그러나 이 또한 스토리로 넘어설 수 있다.

당신은 국제 배송의 느림을 ‘여행’으로 바꾼다. 포스터가 포장을 기다리는 동안, GPT는 손님에게 ‘여권’을 발급한다. 포장대에서 찍은 사진, 공항 화물의 그림자, 국경을 넘는 지점의 재미난 사실을 한 장씩 보내 준다. 도착 후에는 ‘입국 도장’과 환영 메시지. 배송의 지루함이 여행의 설렘으로 번역될 때, 기다림은 불만이 아니라 애정이 된다. 자동화된 시스템이지만, 감정의 결은 사람 손길을 닮아야 한다. 물론 모든 가게가 메타버스에 땅을 사야 하는 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연결의 각도다. 오프라인에서 쌓인 작은 의식—카운터 위 손글씨, 손님 이름을 부르는 호흡, 봉투에 새기는 점—을 디지털로 옮겨 적는 일.

GPT는 그 의식을 잊지 않게 하는 비서다. 단골의 알레르기 정보를 보관하고, 생일에 맞춰 추천을 바꾸며, 특정 손님이 좋아하는 농담을 대화 첫 줄로 띄운다. 결국 기술은 기억의 총량을 늘려 준다. 그래서 작은 가게가 큰 브랜드보다 더 큰 마음을 품을 수 있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는 초고층의 야망이 오르내린다. 누군가는 사막 위의 거대한 직선을 유토피아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늘을 걱정한다. 그러나 골목의 유토피아는 다르다. 영업이 잘되는 날보다 손님이 없던 오후의 긴 한숨, 밤새 만든 시안이 아침에 마음에 안 들어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고집, 그런 날에도 문을 열고 불을 켜는 손. 그 손이 만든 우주는 작아서 단단하다.
메타버스의 장점은 바로 이 작고 단단한 세계가 멀리도, 자주도, 동시에 열릴 수 있다는 데 있다. 유토피아가 누군가의 통치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의 속도로, 우리의 방식으로, 이동 가능한 장터를 늘려 가면 된다. 그러니 이번 달의 목표를 마음속으로만 정해 보자. 당신의 가게 세계관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그 문장을 말할 수 있는 AI 점원을 하나 만들고, 그 점원이 일할 작은 디지털 가판대를 한 곳에 연다. 금요일 밤이면, 그 가판대에 먼 나라의 아바타가 찾아와 “그 포스터, 네온 블루로도 나올까요?”라고 묻는다. 당신은 웃으며 대답한다. “물론이죠. 그리고 뒷면은 비워둘게요. 당신의 한 줄을 위해.” 그 한 줄이, 골목에서 시작된 유토피아를 멀리까지 밀어 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