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힌 가게 셔터를 절반만 올리면 바람보다 먼저 먼지가 들어온다. 우크라이나 동부 슬로뱐스크의 중앙시장, 불에 그슬린 파이프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오후였다. 호스를 말아 차에 싣던 사내가 말했다. “이게 끝났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요. 우리 가게는, 여기서의 삶은.” 그는 성을 밝히지 않았다. 그의 손, 검댕 묻은 손끝에서 작은 스패너가 바닥을 딱 소리 내며 굴렀다. 그 장면을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보고 있던 나는, 서울 합정의 카페에서 늦은 점심을 마치고 계산을 하던 주인 얼굴이 겹쳐졌다. “전기도 올 듯 말 듯, 인건비는 오르고, 임대료는 내년부터 또 오를 거래요.” 카페 주인은 웃으며 말했지만 웃음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멀리서 벌어지는 전쟁은 뉴스가 되고, 뉴스는 어느 순간 벽지처럼 일상에 붙는다. 하지만 시장에 불이 붙으면, 그리고 누군가는 그 불 속에서 호스를 정리하며 “이제 끝”이라고 중얼거리면, 우리는 같은 업의 사람으로서 더 이상 먼 일이라 말하기 어렵다. 전쟁은 거대한 정치와 군사 전략의 언어로 설명되지만, 그 언어 아래에는 수만 개의 계산서와 열쇠꾸러미, 낡은 영수증 파일과 벽에 붙인 스케줄표가 있다. 소상공인의 세계는 늘 그렇다. 국가의 전선이 땅 위에 그어질 때, 동네의 전선은 계산대와 출입문 사이, 거래처와 손님 사이, 오늘과 내일 사이에 그어진다. 도네츠크로 밀려드는 포성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무너진 벽을 등지고 장부를 펼친다. 누구는 문을 닫고, 누구는 다른 동네로 짐을 싣는다.

어떤 사람은 새벽에 텔레그램을 뒤진다. “오늘은 어느 길이 열렸나, 어느 창고가 멀쩡한가.” 전쟁 초반, 어떤 여성은 잠들기 위해 불탄 적군의 사진을 찾았다 했다. 그 심리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위기를 버티는 방식이 종종 통제의 환상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은 알겠다. “그래도 내가 아는 게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 마음이 잠을 오게 하고 아침을 오게 한다. 소상공인에게 그 마음은 곧 가격표를 다시 쓰는 일이고, 거래처에 카톡 한 줄 더 보내는 일이며, 재고를 손으로 세어보는 일이다. 사소하지만 그 사소함이 곧 생존의 기술이다. 여름의 도시 루가노에서 각국 대표들이 재건의 선언을 읽을 때, 시장의 사내는 여전히 호스를 말았다. 7,500억 달러라는 숫자는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그 돈이 실제로 가게 하나의 유리를 다시 끼우고 셔터의 레일을 바꾸는 순간까지 가려면 무수한 서명과 증빙과 줄서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에 가게는 매출 한 장을 또 잃는다. 전쟁이든 팬데믹이든, 대형 재난의 경제학은 늘 동일한 장면을 반복한다. 큰돈의 약속과 작은돈의 부재 사이, 현금흐름은 메마르고, 그 공백을 메우는 건 결국 주변의 관계망이다. 동네 사람들의 선결제, 고객의 ‘기다릴게요’ 한마디, 단골의 계좌이체, 공급사의 한 달 유예. 재건의 거대한 기금이 오기 전에 도착하는 건 늘 관계의 신용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소상공인에게 우크라이나의 시장과 회의장 사이의 거리는 무엇을 말해줄까. 첫째, 빠른 변화 앞에서 느린 준비의 가치다.

러시아의 포격이 바흐무트 외곽에 일으키는 먼지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몇 주 전부터, 몇 달 전부터 조짐이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상인들은 물류를 두 갈래로 쪼개고, 계산대를 현금에서 모바일로, 모바일에서 클라우드로 옮겼다. 구글 시트든 노트북 옆 종이든, 보관이 분산된 데이터는 위기의 첫날에 빛을 발한다. 우리는 재난을 겪을 때마다 백업을 말하지만, 장부의 백업은 늘 가장 뒤로 밀린다. 재고표와 고객 리스트, 월별 매입·매출 엑셀 파일을 주 1회 외부 저장소에 올려두는 습관은 생각보다 강력한 방공호다. 전기가 끊겨도, 점포를 옮겨도, 스마트폰 하나면 장사를 복원할 수 있다. 둘째, 원거리의 정확한 도달성이다. 전선 뒤로 60킬로를 날아가 탄약고를 타격하는 장거리 로켓의 은유를 빌리자면, 우리는 마케팅이든 거래처 관리든 “먼 곳에 정확히 도달하는” 도구가 하나씩 있어야 한다. 장사를 오래 해온 사람들은 단골의 입소문을 믿는다. 맞다. 그러나 입소문은 대체로 근거리의, 사회적 유대를 공유하는 작은 회로에서 작동한다. 시장이 무너지거나 도심의 유동이 급감하면 그 회로의 전력이 꺼진다. 그때를 위해, 멀리 있는 잠재 고객에게 정확하게 닿는, 예컨대 상권 밖의 커뮤니티 기반 광고, 취향 기반 뉴스레터, 검색 기반 예약 시스템 같은 도구를 장만해두어야 한다. 작은 예산이라도 꾸준히, 고객의 관심사를 ‘좌표’로 삼고 발사하는 훈련을 해두는 것이다.

필요할 때 조준점을 바꿀 줄 알면 시장의 지형이 뒤집혀도 판매의 화력을 잃지 않는다. 셋째, 마음의 체력이다. 키이우의 젊은 직장인이 “이제는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냥 산다”고 말했을 때, 그건 냉소가 아니라 상실에 대한 신규 계약이었다. 불안의 파도를 밀어내는 대신 품에 안고 나아가는 방식. 소상공인은 매일 작은 상실을 계약한다. 재고를 잡아 늘렸더니 다음 주에 비가 오고, 유행을 따라갔더니 단골이 어색해한다. 매일의 판단이 매일의 상실을 포함한다. 그러니 우리는 감정의 뚜껑을 닫아두는 대신, 감정의 탱크를 관리해야 한다. 하루의 끝에 20분은 장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으로 비워둔다. “오늘 나는 무엇을 잃었나, 무엇을 배웠나, 무엇을 남겼나.” 이 세 문장이 다음 날의 매출보다 긴 호흡을 준다. 호흡이 길어질수록 선택은 유연해지고, 유연한 선택은 위기 상황에서의 반사 신경을 키운다. 넷째, 투명성이다. 루가노 선언의 본문에 반복되는 단어는 ‘개혁’과 ‘투명성’이었다. 부패 척결, 법치 강화, 지원금의 흐름을 외부가 들여다볼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 국가 차원의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지원금이든 크라우드펀딩이든, 지역 소상공인 연대 프로젝트든, 사람들은 자금의 흐름과 결과의 상관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가게를 더 오래 믿는다. SNS에 “오늘은 이렇게 썼습니다”라는 지출 내역 캡쳐 하나만 올려도, 고객의 신뢰는 반 걸음 더 들어온다. 그 신뢰는 위기 때 돌아오는 선결제와 미리 주문으로 곧장 환원된다. 투명성은 품격의 문제가 아니라 현금흐름의 문제다. 다섯째, 인력의 순환이다. 전장에서 가장 귀한 병사를 잠시 빼서 새로운 무기에 대한 훈련을 시키는 결정은 언제나 어렵다. 하지만 그 어려운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조직만이 다음 국면에서 체력을 갖는다. 가게도 같다. 늘 가장 손이 빠른 직원에게 모든 중요한 일을 몰아주면 지금은 수월하다. 그러나 언젠가 그가 휴가를 가거나 떠나면 매출의 절벽을 만난다. 가장 능숙한 사람을 일주일에 한 번은 ‘교육자 모드’로 전환시키고, 초보에게 계산대의 일부를 맡기고, 초보가 실수하더라도 시스템이 그 실수를 완충하도록 설계를 바꾸자. 메뉴의 단순화, 포장 규격의 통일, 스크립트화된 응대 문장 같은 것들이 망가지지 않는 계산대를 만든다. 전선의 교대가 가능한 부대만이 오래 싸운다. 여섯째, 지역과 세계의 이음새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오랜 중립을 접고 새로운 연합에 들어서는 과정은 소상공인의 세계에서도 반복된다. 평소에는 고립이 자립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건이 바뀌면, 자기만의 방식은 취약점이 된다. 동네 연합과 이웃 업종의 협력, 전국 단위의 공급망 커뮤니티, 같은 업종의 정보 교환 채팅방, 그리고 해외의 소량 직구 네트워크까지. “연합”은 거창한 조약이 아니라, 일상의 전화번호부를 두꺼워지게 하는 일이다. 특히 재난 시기에는 서로의 창고를 공유하거나, 포장재를 공동 구매하거나, 고객을 나눠 받는 협업이 생사의 경계를 바꾼다. 연합의 조건은 신뢰, 그리고 신뢰의 조건은 작고 반복되는 호의다. “내일 상자 50개 먼저 쓰세요, 토요일에 갚으세요.” 그 한 문장이 동맹의 시작이다. 일곱째, 서사의 힘이다. “우리 군이 잘하고 있다”는 말이 자주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의심을 배운다. 디지털 시대, 낙관주의는 필터처럼 흐릿해진다. 반대로 지나친 비관은 손님을 도망가게 만든다. 가게의 서사는 깔끔해야 한다. “이번 달 우리는 이런 도전을 겪고 있고, 이렇게 대응 중이며, 다음 주엔 이렇게 바뀝니다.” 메시지는 짧고 사실로 구성하고, 감정은 사장님의 얼굴과 목소리로 직접 전하자. 손님은 과장된 홍보문구보다 당신의 평범한 불안과 구체적인 계획을 더 오래 기억한다.

서사의 선명함은 고객의 참여를 불러온다. “그럼 다음 주 신메뉴 테스트 때 갈게요.”, “택배가 밀리면 픽업으로 바꿀게요.” 사람들은 ‘함께 버틴다’는 줄거리에 기꺼이 출연료를 낸다. 여덟째, 재고의 철학이다. 전쟁의 도시에서 탄약고는 생명줄이다. 우리에게 재고는 뭐라 부를 수 있을까. 현금이긴 한데 움직이지 않는 돈, 미래의 매출이긴 한데 아직 오지 않은 손님. 재고가 너무 많으면 모래주머니 같은 부담이 되고, 너무 적으면 기회를 잃는다. 정답은 없지만 방향은 있다. 변동성이 커질수록 재고의 SKU를 줄이고 회전을 빠르게 하자. ‘잘 나가는 것 위주로만 팔자’가 아니라, ‘판다는 행위를 간결하게 만들자’가 핵심이다. 상자를 뜯는 횟수, 라벨을 붙이는 손길, 유통기한을 체크하는 눈길이 줄어들면 위기의 시간도 줄어든다. 바쁘다고 생각해서 줄이지 않으면 정말 바빠져서 줄일 수 없게 된다. 아홉째, 기술의 겸손한 도입이다. 클라우드 포스, 간편결제, 배달 연동, 예약 관리, 간단한 CRM. “그거 다 돈 들어요.” 맞다.

그러나 기술은 대체로, 도입 전에 비싸 보이고 도입 후에 싸게 느껴진다. 전기처럼. 작은 가게의 기술은 반짝이는 앱을 늘리는 일이 아니다. 실패했을 때 되돌리기 쉬운, 서로 잘 연결되는, 누가 봐도 배우기 쉬운 것을 고르는 일이다. 특히 데이터의 내보내기(export)가 쉬운 도구를 선택하자. 플랫폼은 영원하지 않다. 옮기기 쉬운 시스템이 유연성을 보장한다. 휴대폰 하나만 들고 다른 동네로 가도 장사를 다시 켤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절반은 이겼다. 열째, 끝내는 법과 다시 여는 법이다. 시장의 사내가 말하던 “끝”은 사실 하나의 쉼표였다. 사람들은 물건을 챙겨 나왔고, 불은 꺼졌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었다. 재난 앞에서는 ‘끝’이 자주 온다. 하지만 장사의 끝은 곧 다음 장소, 다음 형태, 다음 가격표의 시작이 된다. 끝낼 줄 아는 가게는 빚을 적고, 관계를 남기고, 이름을 지킨다. 소셜 미디어 계정과 전화번호, 단골의 명단, 브랜드의 이야기.
이것들을 붙잡아 두면, 주소와 간판이 바뀌어도 계속된다. 서울의 어느 빵집은 임대료 협상이 깨지자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작은 팝업을 열고 6주 후 큰 매장을 열었다. 그 사이를 이어준 건 손님들의 DM과 미리 주문이었다. 끝내는 법을 배운다는 건, 사실 어떻게 다시 여는지를 배우는 일이다. 우크라이나의 장면들은 한국의 가게와 무관한 듯 보인다. 하지만 진동은 유라시아 대륙의 끝까지 닿는다. 물류비는 이미 요동쳤고, 곡물 가격, 에너지 가격, 환율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메뉴판을 흔든다. “왜 이렇게 비싸졌어요?”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한숨 대신 답을 준비해야 한다. 원가 구조를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함께 버틸 시간표를 제안하자. “이번 달은 A세트를 추천할게요. 저희도 원가를 아끼고, 손님도 가성비를 챙길 수 있어요.” 고객은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가 열어둔 창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스스로에게 묻자. 나는 누구의 연합에 속해 있는가. 누구의 명단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가.
누가 나의 문이 닫히는 날 전화를 걸어줄까. 전쟁의 화력과 재건의 자금, 수학자의 상처럼 멀고 큰 이야기 뒤에 실제로 가게를 움직이는 것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전화번호부를 열고, 메시지를 한 줄 보내자. “이번 주에 우리, 포장재 공동 구매할까요?”든 “메뉴 사진 좀 같이 찍을래요?”든, 작은 제안이 하나의 방공호를 만든다. 러시아의 장거리 포격을 막아낼 수는 없지만, 서울의 갑작스런 장마와 환율의 비바람 속에서 우리 매출을 지키는 벽을 조금 더 두껍게 만들 수는 있다.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 보자. 호스를 말아 차에 싣던 사내가 마지막으로 문을 닫기 전에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망연자실의 끝에서 약간의 결기를 담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내일 다른 곳에서 작은 메모장을 펼 것이다. 장부의 첫 줄에 무엇을 쓸까. 품목, 수량, 단가. 그 위에 얇은 연필로 적을지도 모른다. “다시 시작.” 우리의 이번 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 밤, 장부를 백업하고, 연락처 몇 명에게 안부를 묻고, 가게의 이야기 한 문장을 정리하자. 내일 셔터를 올릴 때, 바람보다 먼저 들어오는 것은 먼지가 아니라, 준비해 둔 그 한 문장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