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은 사소한 장면 하나로 시작해보자. 성수동 골목의 월요일 오후, 8평 남짓한 로스터리 카페를 운영하는 박 사장은 에스프레소를 내리던 손을 멈추고 휴대폰 화면을 스크롤했다. “현대차그룹, 올해 청년 7천200명 채용… 내년 1만명 검토.” 이어서 “삼성, 향후 5년 6만명.” “SK, 올해 8천명.” “포스코그룹, 5년간 1만5천명.” 화면은 굵은 숫자와 이름으로 번쩍였다. 바쁜 점심이 지나고 오후 손님이 뜸해지는 이 시간, 그는 종종 대기업 뉴스를 훑어본다.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대기업이 사람을 많이 뽑기 시작하면, 우리 가게의 인력 사정과 매출도 방향을 같이 틀더라고요.” 그는 예전에 인근 사무단지에 입점한 IT대기업이 채용을 늘리던 해를 떠올렸다. 평균 주문 단가가 올라갔고, 저녁 7시 이후의 테이크아웃 비중이 커졌다. 하지만 동시에 바리스타 구인 난이도도 치솟았다. 면접장에 나온 지원자들은 “지금 S전자 계약직 제안도 받았는데요…”라며 시급 협상을 당당히 제시했다. 대기업의 채용 뉴스는 그에게 내일 날씨만큼 현실적이었다. 올해 가을, 채용의 공기가 확실히 달라졌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완전히 걷힌 것도 아닌데, 기업들의 발표는 구체적이고 큼직하다. 삼성은 앞으로 5년간 6만명, 연간 1만2천명 꼴로 인재를 들이겠다고 못을 박았다. 반도체와 바이오, 그리고 인공지능 같은 핵심기술에 집중한다는 말은 곧 ‘공대생’과 ‘데이터’라는 두 단어로도 번역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만 청년 7천200명을 뽑고 내년에는 1만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전동화와 SDV, 그러니까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로의 대전환을 위해서다. SK는 올해 총 8천여명을, 그중에서도 AI와 반도체, 디지털전환을 앞세운 이공계 인재를 주요 타깃으로 삼는다. LG는 3년간 1만명, 그중 7천명이 신입이다. 포스코그룹은 5년간 1만5천명, 한화는 하반기만 3천500명, HD현대는 2029년까지 1만명, 유통의 신세계도 공채를 개시한다. 숫자는 도표처럼 늘어선다. 중요한 건 이 도표가 우리 동네 슈퍼, 프랜차이즈 두 매장, 동네 학원, 제조 하청 공장, 동호회에서 만든 소규모 스타트업까지, 수많은 작은 경제 주체의 직원 모집 공고에도 보이지 않는 자국을 남긴다는 사실이다. 소상공인이 느끼는 첫 번째 파도는 사람 문제다. 좋은 인재가 대기업으로 빨려 들어가면 남는 풀이 줄어든다. “그럼 우리는 더 못 뽑겠네”라고 단정 짓는 건 빠르다. 대기업의 대규모 채용은 ‘풀을 줄인다’와 동시에 ‘풀을 키운다’는 상충된 효과를 낳는다. 채용 공고가 쏟아지면 청년층의 구직활동이 활성화되고, 숨은 인력이 구직시장으로 올라온다. 취업 준비생이 자기 역량을 점검하고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면서, 대기업만 바라보던 시선이 조건과 경험을 비교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다시 말해, ‘지금 당장’ 대기업에 합류하기 어려운 인재들이 인턴십, 계약직, 프로젝트 베이스, 스몰 비즈니스에서의 현장 경험이라는 브리지 옵션을 탐색하게 된다. 그 브리지를 설계하는 쪽이 바로 우리다. 둘째 파도는 수요의 재편이다.

전동화, 배터리, AI, 바이오가 키워드라면, 이들이 직접 고용하는 인원만 늘어나는 게 아니다. 그 산업을 둘러싼 수많은 B2B·B2C 주변부에서 파생 수요가 분출한다. 예를 들어 전기차 부품사로 납품하는 동네 가공업체는 공정 자동화 솔루션을 도입해야 하고, 직원 안전 교육은 실습형으로 개편해야 한다. 바이오 클러스터 근처의 세탁소는 방진복과 특수 작업복 세탁에 대한 인증과 프로세스를 갖추는 순간 매출의 성격이 달라진다. AI 인재가 몰리는 지역의 공유오피스는 밤 10시 이후의 회의실 이용률이 오르고, 그 주변 편의형 식당은 늦은 시간 건강한 단품 메뉴를 붙이는 게 이익이 된다. 산업 키워드는 머리글자 약어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동네의 영업시간, 상품 구성, 교육 커리큘럼, 심지어 폐기물 수거 계약서 문구까지 바꾸라고 신호를 보낸다.

셋째 파도는 정부와 제도의 움직임이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신입 채용 시 혜택”을 직접 언급한 이상, 인턴십 지원, 일학습병행, 청년친화 강소기업 지정, 고용장려금 같은 제도는 더 적극적으로 설계되고 집행될 공산이 크다. 이런 제도는 공고가 복잡하고 서류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늘 ‘나중에’로 밀린다. 하지만 대기업의 채용이 기지개를 켠 지금이 바로, 공공 보조금과 세제 혜택으로 인건비 리스크를 상쇄하며 체계를 업그레이드하기 좋은 창(window)이다. 제도를 이해하고 서류를 미리 갖춘 소상공인이 인재 시장에서 큰손이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음 달부터 일하시죠. 우리 회사, 정부 지원 인턴십으로 3개월 함께하고 전환 협의 드릴게요. 교육비와 자격증 응시료는 우리가 부담합니다.”라고 확신을 담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다시 성수동의 카페로 돌아가 보자. 박 사장은 채용 공고를 새로 올렸다. 직함은 바리스타가 아니라 ‘로스팅·메뉴개발 트레이니’. 조건은 주 4.5일, 오전·오후 선택제, 인근 커피교육원 정규과정 수강료 지원. 그리고 공고 하단에 체크박스 하나를 달았다. “6개월 후 매장 신메뉴 개발 프로젝트 참여.” 이날 저녁, 그는 동네 메이커스페이스 운영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 달 로봇 바리스타 체험 행사 기획 중인데, 우리 매장 야간 팝업으로 묶어보면 어때요?” 이벤트 페이지에는 ‘AI·로봇·메뉴 R\&D’라는 키워드가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채용은 노동의 교환만이 아니라 학습의 약속일 때 더 빠르게 성사된다. 대기업이 사람을 빨아들일 때, 우리는 ‘학습의 약속’으로 다른 길목을 연다. 인력 전략을 한 겹 더 벗겨보자. 지금 대기업이 주목하는 전동화, SDV, AI, 바이오의 공통분모는 ‘데이터’와 ‘안정성’이다. 소상공인의 채용과 운영에서도 같은 축을 세우면 강해진다. 데이터는 거창한 서버 이야기가 아니다. 매장별·품목별·시간대별 매출, 이탈률, 교육 이수 현황, 고객 재방문 간격 같은 숫자가 인사 제도와 연결되어야 한다.

가공공장은 불량률과 설비 다운타임을, 요식업은 인당 생산성(시간당 처리 주문수)을, 학원은 수강자의 숙제 제출 템포를 인사 평가의 일부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다. 안정성은 근무 스케줄의 예측 가능성, 안전 교육의 반복, 장비 매뉴얼의 표준화로 구현된다. 대기업 문화의 클리셰 같지만, 이를 소형 조직에 맞게 찌그러뜨리면 놀랍도록 강력하다. 지원자는 “여긴 체계가 있다”는 감각만으로 시급 500원 차이를 넘어온다. 물론 돈 얘기를 피해갈 수는 없다. 대기업의 채용 확대는 보상 기대치를 끌어올린다. 그럴수록 총액이 아닌 구조를 개조해야 한다. 기본 시급을 무리하게 올려 단기 유입을 유도하기보다, 일정한 성과와 교육 완료에 맞춘 단계적 인상, 프로젝트 참여에 따른 보너스, 스톡이 아닌 ‘스토어 크레딧’ 형태의 복지도 검토할 만하다. 예컨대 동네 식당은 파트타이머에게 평일 마감 근무 10회 달성 시 ‘본인·동행 1인 무료 코스’ 바우처를 주고, 이 바우처가 SNS 콘텐츠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설계한다. 제조업이라면 국가기술자격 취득 시 장비 교체 우선권과 유급 교육일을 제공한다. 핵심은 보상이 현장과 학습을 오가며 선순환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기업의 연봉표를 따라갈 수 없다면, 우리는 학습경험표와 프로젝트경험표로 경쟁하면 된다. 채용 문법도 바꿔야 한다. 공고문 첫 문단에서 요구조건을 나열하는 대신, “우리 팀에 들어오면 3개월 차에 이런 결과물을 만들게 됩니다”를 맨 앞에 둔다.

로지스틱스 스타트업이라면 ‘고객사의 동일 구간 배송시간을 평균 7분 단축’이라는 미션을, 동네 빵집이라면 ‘아침 7시 식빵 결품률 0%’라는 목표를 시뮬레이션과 함께 보여준다. 지원자는 미래의 하루를 상상하며 지원한다. 면접은 더 짧고 더 자주, 대신 첫 출근 전 2시간짜리 실습을 필수로 넣자. 실습 중 체크리스트는 기술보다 태도와 안전에 집중한다. 이것이 작고 빠른 조직이 대기업과 다른 면에서 줄 수 있는 확실한 경험이다. 또 하나의 숨은 보너스가 있다. 대기업은 공채를 재개하며 과감히 ‘신입’에 다시 베팅하기 시작했다. 신입이 늘면 필연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신입’도 늘어난다. 그들은 떠나고, 다시 시장으로 돌아온다. 이때 우리는 부드러운 착륙장이 되어야 한다. “대기업에서 6개월 만에 나온 사람은 곧바로 문제다”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그들의 실패 경험을 작은 맥락으로 재배치하자. SDV 프로젝트에서 테스트 자동화에 좌절했던 지원자는 동네 IoT 제조사의 검수라인에서 빛을 볼 수 있다. 반도체 공정 교육 도중 매뉴얼 암기가 괴로웠던 청년은 매장 고정 메뉴 대신 ‘일주일 한 번 실험 메뉴’ 문화가 있는 카페에서 창의성이 열린다.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왜 나왔냐”가 아니라 “무엇을 배우다 멈췄냐”다.
멈춘 지점을 이어주는 것이 우리 규모의 조직이 탁월해질 수 있는 영역이다. 이 시기에는 협업의 창도 커진다. 대기업은 인턴십과 산학협력을 확대한다 했다. 대학과의 캡스톤 디자인은 꼭 첨단만 다루지 않는다. 지역 대학 식품영양학과와 손잡고 동네 분식점의 저염 레시피를 개발할 수 있고, 디자인학과와 같이 전통 공방의 포장재를 리디자인할 수도 있다. IT학과와는 안전교육용 마이크로 러닝 콘텐츠를 제작해 볼 수 있다. 포인트는 ‘기업이 키우려는 역량’과 ‘우리가 당장 필요한 해결과제’를 교차시키는 것이다. 학생에게는 이력서의 이야기거리가, 우리에게는 실제 개선이 남는다. 산학과 공공의 테이블에 앉을 때, 회의 목적을 “지원금 받기”가 아니라 “우리 운영의 특정 수치 개선”으로 명확히 가져가면 대화는 압축된다. 재학생과 졸업예정자, 복수전공자, 심지어 휴학생까지 다양한 루트를 열어두면, 예상치 못한 인재가 걸려든다. 채용의 언어를 ‘입사’에서 ‘참여’로 옮기는 것도 좋다. 주말 팝업, 프로젝트 베이스 계약, 리모트 콘텐츠 제작, 단기 실험 매장 운영 같은 참여 포맷은 대기업이 당장 흉내 내기 어려운 민첩함이다. 전기차 충전소 인근에서 2주간만 열어보는 야외 카트 매장, 신축 공장 준공식과 연계한 지역 푸드 페스티벌, 바이오 클러스터 새 입주 기업을 위한 웰컴 키트 제작처럼 산업의 움직임과 리듬을 맞추는 기회가 곳곳에 숨어 있다. 참여 포맷은 매출도 만들고, 자연스러운 채용 파이프라인도 만든다.
함께 일해본 사람이 가장 확실한 레퍼런스다. 정보의 속도를 따라잡는 루틴도 만들어야 한다. 많은 소상공인이 뉴스 알림을 개인 관심사로만 둔다. 하지만 채용기사가 뜨는 그 주에는 지역 일자리센터 공고, 대학 경력개발센터 소식, 산업단지 입주사 공지, 기업 채용 박람회의 부스 배치도까지 훑어보는 습관을 붙이면 방향 감각이 생긴다. 채용 박람회에 구직자로 가지 말고, 협력사·지역 상인으로 가 보자. 명함은 “대표” 하나만 들고 가지 말고, “현장 교육 담당”, “메뉴 개발 리드” 같은 역할 카드 몇 장을 함께 챙겨라. 우리는 작은 조직이지만 역할을 분할해 보여줄 수 있다. 상대는 체계가 보이면 신뢰한다. 인력 유입 이후의 체류 시간을 늘리려면 온보딩을 설계해야 한다. 첫날은 장비 실습과 동선 숙지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되, 마지막 30분을 ‘성공 체험’에 배정한다. 제품 한 줄을 완주하거나, 고객 피드백을 직접 수집해서 팀 메신저에 올리는 작은 루틴이면 충분하다. 둘째 날에는 그가 일할 이유를 하나 선물한다. “이달의 실험 메뉴를 함께 만듭니다.” “주간 업무 자동화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바로 테스트합니다.” “고객 CS 문장을 3개만 바꿔봅시다.” 이렇게 작은 실험의 권한이 주어지면, 대기업의 거대한 체계와 다른 종류의 자율성이 생긴다. 이 자율성은 때로 연봉 10%의 차이를 상쇄한다.
숫자에 민감한 독자라면, 이 모든 조언이 실제로 ‘이익’에 닿는지 묻고 싶을 것이다. 가정을 달리해 계산해 보자. 카페의 시간당 처리 주문이 18잔에서 21잔으로 올라가면, 하루 10시간 영업 기준으로 30잔이 추가된다. 잔당 공헌이익이 1,200원이라면 하루 3만6천원, 월 100만원 남짓이 늘어난다. 이 개선의 출발점이 ‘교육비 지원+트레이니 포지션’이었다면, 월 30만원의 교육 관련 비용과 20만원의 시간표 유연화에 따른 인력 보충비를 더해도 순증 50만원이 남는다. 숫자는 업종마다 달라지겠지만, 메시지는 같다. 교육과 실험 권한이 결합된 채용 구조는 손익계산서에 결국 흔적을 남긴다. 대기업의 채용 확대로 인건비 시세가 들썩일 때일수록, 우리는 구조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기세’다. 기업이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겠다고 큰 숫자를 꺼내 드는 순간, 시장에는 낙관의 기세가 생긴다. 낙관은 부주의한 자신감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실제로 도착한다는 신호다. 지난해 우리는 “불확실성”이라는 단어를 수십 번 말했고, 선택을 미뤘다. 이번엔 달라야 한다. 채용 기사는 남의 집 잔치가 아니다.
인근 공장과 오피스, 연구동과 시험실, 물류센터와 백화점으로 출근할 새 사람들의 생활권이 바로 우리의 상권이고, 그 사람들이 처음 겪을 도시의 얼굴이 우리의 매장과 서비스다. 우리는 그 얼굴의 표정, 즉 경험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다. 밤, 박 사장은 닫힌 셔터 앞에 서서 내일의 칠판 메뉴를 적었다. “테이스팅 비행: 산미·바디·아로마의 차이를 배우는 15분.” 가격은 커피 한 잔과 같은 수준으로 낮췄다. 직원 채용 공고에는 ‘근무 중 참여 가능’이라고 덧붙였다. 배우고 싶은 사람은 모인다. 배운 사람은 남는다. 그리고 남은 사람과 함께 우리는 다음 계절을 만든다. 대기업의 공채가 불을 켜면, 우리의 작은 불빛도 함께 밝아진다. 그 불빛이 새로 들어올 청년들의 얼굴을 비춰줄 때, 동네의 경제는 생각보다 빨리 회복한다. 그 시작은 거창한 투자가 아니다. 우리 매장의 공고문 첫 문장, 교육 계획서 한 장, 다음 달의 작은 팝업 하나. 이번 주, 그 셋을 실제로 만들어보자. 그러면 숫자는, 그리고 사람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