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장사를 준비하던 분식집 TV에서 신인 드래프트 생중계가 흘러나왔다. 튀김 기름이 달아오르는 소리와 함께 사회자가 “전체 1순위!”를 외치자 가게 안의 시간도 잠깐 멈춘 듯했다. 천안북일고의 박준현이 키움의 선택을 받았다는 자막이 지나가고, 옆자리 배달기사 손님이 “역시 투수지” 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두 번째 호명이 뜨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NC가 예상과 달리 투수가 아니라 내야수 신재인을, 이어 한화가 빠른 발의 외야수 오재원을 지명했다. 화면 아래에는 간단한 성적과 구속, 도루 숫자가 달렸고, 표정이 아직 앳된 아이들이 모자를 눌러쓰며 무대를 내려갔다. 그 순간, 나는 기름 냄새와 박수 소리 사이에서 소상공인에게 드래프트가 주는 교과서를 다시 펼쳐 보게 됐다. 드래프트는 극적인 장면이 많다. 누군가는 1순위로 미리 예약된 듯 올라타고, 누군가는 팔꿈치 피로골절 소식 하나로 8순위까지 내려간다. LG가 양우진을 그 지점에서 건졌다며 단장이 “운이 좋다”고 웃는 모습은, 사입 시장에서 마지막 한 묶음을 값싸게 챙겨 온 소매상인의 표정과 닮았다. 여기엔 냉정한 원리가 있다. 위험을 숫자로 환산하고, 시간표를 길게 놓고, 포지션의 희소성과 트렌드를 읽는 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흔드는 단 하나의 변수, 지금 우리 팀에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올해 1라운드는 투수 6명, 야수 4명으로 끝났다. 숫자만 보면 ‘역시 투수의 시대’라고 말하고 싶어지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결이 다르다. NC와 한화는 모두 팀 사정과 리그 흐름을 끼워 맞춰 타자—그것도 내야와 중견이라는 포지션—를 앞에서 가져갔다. 한화가 “중견수의 중요도가 높아진 트렌드에 맞춘 선택”이라 설명하자, 나는 배달 동선 최적화에 예산을 더 태우던 동네 카페 사장님이 떠올랐다. 요즘은 커피 맛만큼이나 빠른 전달이 고객 만족을 좌우한다는 걸, 현장에서 먼저 느낀 사람들은 숫자로, 물류로, 사람 배치로 증명한다. 야구에서 중견수의 수비 범위가 투수의 실점을 지워 주듯, 카페의 라스트마일은 맛의 손실을 줄여 준다. 그래서 모두가 ‘투수’라고 말할 때 누군가는 ‘중견수’를 고른다. 시장은 그런 곳이다. 롯데가 193cm의 신동건을 4순위로 데려가며 “높은 릴리스 포인트와 커브”를 강조한 대목은, 피처가 아니라 ‘제형과 공법’을 산 것과 같다. 비누 제조 장인의 손 높이와 온도가 만들어 내는 질감처럼, 투수의 릴리스 포인트와 각도는 제품의 일관성을 만든다. SSG가 김민준의 “104탈삼진, 볼넷 9개”에 꽂힌 것은 더 노골적이다.

숫자, 특히 좋지 않은 사건의 부재를 의미하는 숫자—볼넷이 드문 일—에 베팅했다. 소상공인에게 이건 클레임율과 반품율, 인건비 대비 생산량으로 번역된다. 화려한 매출 곡선을 자랑하기 전에, 불량과 이탈을 억제할 수 있는 체질인지 스스로 묻는 질문. 제구가 좋은 투수는 위기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제어가 좋은 가게는 성수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두산이 외야수 김주오를, 키움이 또 다른 1라운드 지명권으로 내야수 박한결을 데려간 건 밸런스의 언어다. 한 해 전 좋은 야수 셋을 뽑았던 삼성이 올해는 “강한 공을 던지는 신체조건 좋은 투수”로 방향을 튼 것도 그렇다. 사업에서 밸런스는 그냥 “여러 개 팔자”가 아니다. 서로 보완하는 속성을 짝짓는 일이다. 여름에 냉면이 잘 팔리는 집이 겨울엔 온면을 준비하는 건 누구나 한다. 하지만 같은 면이라도 삶는 물의 염도, 국물의 점도, 회전율을 견딜 설비의 압력까지 맞춰야 진짜 균형이 된다. 한 팀이 선발과 불펜, 내야와 외야를 조화시키듯, 가게는 고정비와 변동비, 주력과 실험을 한 그릇에 담아야 한다.

올해 드래프트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1,261명이었고,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된 건 110명, 8.72%에 불과했다. 남은 91.28%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 익명의 다수가 내일의 지역 리그를 지탱하고, 대학에서 기량을 다듬고, 때론 완전히 다른 길에서 다시 나타난다. 소상공인 생태계도 비슷하다. 세상에는 기사화되지 않은 작은 시도들이 바다처럼 쌓이고, 그 바다가 특정한 날 하나의 파도를 만들어 누군가를 해변으로 밀어 올린다. 우리는 종종 1순위만 기억하지만, 시장은 11라운드까지 다 쓴 팀에게 기회를 준다. 모든 구단이 11라운드까지 지명권을 행사했다는 사실은, 작은 선택을 포기하지 않는 끈기의 다른 표현이다. 박준현에겐 다른 서사가 붙었다. 고교 시절 학교폭력 의혹이 있었으나 무혐의로 결론나면서 1순위가 굳었다. 평판 리스크가 어떻게 거래의 가격을 바꾸는지, 그리고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순간 가격이 복원되는지 보여 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소규모 브랜드가 한 번의 후기 논란에 얼마나 취약한지 우리는 안다.

중요한 것은 위기가 올 때의 프로세스다. 사실 확인의 속도, 사과의 언어, 재발 방지의 구조. 키움이 “고민 없이 지명했다”는 말이 성립하려면, 구단 내부의 검증 체크리스트가 충분히 작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평판은 매출의 그림자다. 빛이 달라지면 길이도 달라진다. 가장 요동치는 장면은 팔꿈치 부상으로 내려갔던 재능이 8순위에서 집을 찾는 순간이었다. 양우진은 190cm의 체격과 강속구를 가진 고교 상위권 유망주였지만, 최근의 피로골절 이슈로 보수적인 구단들의 손을 피했다. LG는 계산기를 두드렸을 것이다. 회복 기간, 재활 성공률, 현재 뎁스, 그리고 ‘만약’의 시나리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결함 포함 거래’의 기술이다. 입고 직전 페인트가 벗겨진 가구, 상자 모서리가 찢어진 가전, 패키지 오류로 박스가 다른 화장품.

대부분의 가게는 이런 상품을 기피한다. 하지만 어떤 사업자는 그것들을 손봄과 보증으로 되살려 마진을 키운다. 물론 변수는 크다. 그래서 오히려 원칙이 필요하다. 단기 현금흐름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선에서,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눈높이를 끌어올릴 기회인지 따져 보는 원칙. LG의 미소는 그런 원칙이 있었음을 암시했다. 한화가 중견수에 꽂힌 이유를 “현대 야구에서 중견수의 중요도가 높아졌다”라고 설명한 것도 마음에 남는다. ‘포지션의 재해석’은 작은 가게에서 더 자주 일어난다. 빵집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 오븐 앞이 아니라, SNS를 통해 오전 9시에 첫 트레이를 올리는 손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사진 한 장이 줄을 만들고, 그 줄이 동네의 시간을 만든다. 중견수는 투수를 살리고, 좌우 코너 외야를 정렬시키며, 내야수의 움직임까지 바꿔 놓는다.

SNS 담당은 제품을 살리고, 매장의 동선을 정렬시키며, 사장의 하루를 바꿔 놓는다. 포지션의 재해석은 결국 고객 경험을 중심으로 결판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예상과의 싸움’이다. 드래프트를 지켜보던 팬들은 대부분 “NC와 한화는 투수 갈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시장도 늘 예측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당신이 어떤 메뉴를, 어떤 가격에, 어떤 입지에서 팔지 ‘그럴 듯한’ 그림을 그리고 온다. 그런데 당신이 그 예상을 뒤집을 때, 반드시 이유와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중견수의 가치가 높아졌다’처럼 명확한 논리 말이다. 단지 다르게 보이려고 다른 선택을 하면, 그것은 전략이 아니라 기행이 된다. 다르되, 맞아야 한다. 키움이 트레이드로 얻은 10번 지명권으로 내야수 박한결을 데려간 장면은 자원의 순환을 보여 준다.

어떤 권리는 보존되고, 어떤 권리는 교환되며, 어떤 권리는 미래의 옵션으로 쌓인다. 소상공인에게 권리는 테이블이자 시간표다. 입점 권리, 배달 플랫폼 노출 권리, 퀵 커머스의 타임슬롯, 상권의 이벤트. 권리를 쌓는 데 현금을 쓰는 대신, 권리를 교환해 시너지를 만들 수도 있다. 내일의 매출이 아닌 모레의 협업을 위한 교환. 키움은 불펜 자원 조상우를 트레이드하며 지명권을 얻었고, 그 자리에서 다음 세대의 내야를 채웠다. 우리도 때로는 가장 잘 되는 메뉴를 잠시 비워 두고, 그 자리에 새로운 원두를 테스트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신규 입단의 확률이 8.72%라는 숫자 앞에서 현실감이 확 다가온다.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한다. 하지만 드래프트의 본질은 실패를 줄여 성공에 다다르는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스카우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선수의 습관, 체력, 심리, 가족사를 묻는다.
가게라면 동네의 아침 햇살이 어느 각도로 들어오는지, 건물 뒤편의 배수구가 언제 넘치는지, 몇 시에 유모차가 몰리는지 같은 디테일을 수집해야 한다. 이 디테일이 모여 ‘우리만의 보드’를 만든다. 구단이 내부 순위표를 갖듯, 가게도 메뉴와 고객, 입지와 협력사를 순위로 정리해 둬야 한다. 위기가 오면 보드를 꺼내들고, 감정 대신 순서대로 움직이는 힘. 큰돈이 아니라, 큰습관이 생존을 만든다. 가끔은 이야기의 외곽이 더 중요하다. ‘빅3’로 거론되던 선수 중 둘은 이미 메이저리그와 계약해 드래프트 테이블에 앉지도 않았다. 최고의 인재는 언제든 다른 시장으로 떠날 수 있고, 당신이 건우를 기다리는 동안 건우는 이미 공항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카우트는 늘 플랜B와 플랜C를 같은 열정으로 관리한다. 인기 메뉴 재료가 끊겼을 때 당황하지 않고 대체 구성을 꺼내는 가게는, 사실 백스테이지에서 수십 번의 가상 드래프트를 치른 셈이다. 준비가 상실감의 속도를 늦춘다.
분식집 TV 속 무대에서 선수들이 모자 챙을 고쳐 썼다. 누군가는 눈물을, 누군가는 미소를, 누군가는 묵직한 숨을 삼켰다. 카메라가 멀어지자 화면 하단에 또렷하게 남은 건 숫자와 팀 로고뿐이었다. 장사를 다시 시작하며 나는 기름 온도를 175도로 맞추고, 첫 튀김을 살짝 버렸다. 안정된 초반을 위해 치르는 작은 비용이었다. 오늘 드래프트에서 배운 모든 것을 그렇게 내 하루로 번역해 본다. 모두가 투수라 할 때 중견수를 보는 눈, 결함 속 가능성을 계산하는 손, 평판을 지키는 절차, 밸런스를 맞추는 습관, 그리고 보드를 믿는 용기. 드래프트의 한 시간은 작은 가게의 일 년을 압축한다. 우리에게도 모자 챙을 눌러쓰고 무대에 오를 순간은 온다. 그때 준비된 사람만이 호명된다. 그리고 그 호명은 운이 아니라, 오래 쌓인 선택의 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