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손님이 뜸한 시간, 미용실 거울 앞에 서서 가위 각도를 맞추던 은주 원장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구청 위생과였다. “원장님, 상호 변경 신고 서류가 아직 반려 상태입니다. 보완 안 하시면 과태료 대상이고, 경우에 따라 형사처벌이…” 그다음 단어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지난달 인근 상가의 폐업 소식에 맞춰 가게 이름을 ‘헤어지기 좋은 날’에서 ‘헤어지지 말자’로 바꿨을 뿐인데, 그게 형벌까지 이어질 수 있다니. 전화를 끊고 나니 손이 떨렸다. 칼날보다 예민한 감정은 손끝을 타고 내려와, 머리카락 한 올 자르는 일조차 어려워졌다. 그날 오후, 은주는 같은 상가의 숙박업 사장 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나도 비슷했어”라고 했다. 방 번호 표지와 웹사이트 주소를 업데이트했는데, 사업장 위치 확인서류를 뒤늦게 제출하는 바람에 시정명령을 넘겨 형사 입건까지 거론되었다는 것이다. “벌금으로 끝났지만, 예약 플랫폼 평점이 한동안 곤두박질쳤어. 고객센터에 소명하느라 밤을 샜지.” 은주는 말문이 막혔다. 실수 한 번에 전과자 딱지가 붙을 수 있는 나라, 이건 뭔가 잘못됐다. 그리고 며칠 뒤, 뉴스에서 ‘경제형벌·민사책임 합리화’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배임죄 개정’과 ‘행정 미신고 형벌 개선’이 핵심이라는 리포트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으로 제도가 나의 생활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배임이라는 단어는 소상공인에게 멀리 있는 개념처럼 보인다. 하지만 도매상과의 외상 결제, 직원에게 맡긴 카드 사용, 대리점 계약 조항처럼 일상적 결정에도 그림자처럼 드리운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범죄.’ 법전은 이렇게 적지만, 현장에서는 훨씬 복잡하다. ‘임무에 위배’가 무엇인지, ‘손해’가 얼마인지, ‘의도’가 있었는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해석의 폭이 크면 클수록, 결국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영 판단은 작아진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경영판단의 원칙을 보다 명확히 하자, 혹은 배임죄를 경제 영역에서는 대체 입법으로 분리하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누군가는 기업인 봐주기라고 비판하고, 다른 누군가는 혁신을 살리려면 과도한 형벌 리스크를 거둬야 한다고 맞선다. 뜨거운 논쟁 속에서, 동네 가게 주인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편 가르기가 아니다. 내 가게의 리스크가 줄어드는가, 줄어든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다. 은주는 밤마다 서류함을 뒤졌다. 상호 변경 신고서, 영업자지위승계 신고, 고객 개인정보 처리방침, 카드 단말기 명의 변경, 포스(POS) 프로그램 라이선스 계약서. 그제야 기억났다. “아, 미용기구 안전검사 스티커 유효기간…” 스티커 모서리가 갈라져 글씨가 흐릿했다. 다음날, 그녀는 구청을 찾아갔다. 담당 주무관은 커피를 내려주며 말했다. “사실 우리도 업종별 신고사항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법에는 가끔 형벌이 박혀 있죠.

기한을 넘겼다고 바로 수갑이 채워지는 건 아니어도, 고발되면 피곤해집니다.” 은주는 물었다. “그럼 앞으로 바뀌나요?” 주무관은 잠시 웃었다. “논의 중이라고 들었어요. 경미한 경우 형사처벌 대신 과태료나 행정지도 중심으로 간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다만 제도가 바뀌어도 ‘준수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으면 면제되진 않을 겁니다.” 맞은편 동네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흘렀다. 배달 로봇으로 동네 심부름 서비스를 하던 스타트업 대표 경수는 작은 센서를 바꿨다가, 안전 인증 사항 변경 신고가 늦어 과태료 고지서를 받았다. “센서 하나인데 왜 전부 재인증이냐”는 볼멘소리에, 담당자는 “규정상 그렇다”고 답할 뿐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3만 원짜리 센서가 아니라 규정의 속도였다. 제품과 규정 사이의 박자가 어긋나는 동안, 그의 고객들은 다시 오토바이를 불렀다. 경수는 종종 생각했다. ‘내가 배임죄의 당사자가 될 일은 없겠지.’ 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투자금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사용자 데이터와 로봇 운행 기록, 협력업체 비용 정산은 모두 ‘타인의 사무’로 바뀐다. 법이 정교해지면 그는 살 것이고, 흐릿하면 그의 어깨는 더 움츠러들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소상공인의 경영판단은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숫자와 종이, 그리고 시간이다. 누구와 어떤 조건으로 계약했고, 왜 그 가격에 사왔고, 왜 그때 그 결정을 내렸는지.

정답이 아니라 맥락을 남겨야 한다.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맥락이 ‘합리적 판단’의 바닥이 된다. 아무리 제도가 바뀌어 경미한 실수에 대한 형벌이 줄어든다 해도, 경영판단의 원칙은 ‘사후’에만 작동한다. 사전에 적어둔 기록이 없다면 원칙은 공허하다. 은주는 스마트폰 메모장에, 매일의 자잘한 결정을 적기 시작했다. 염색약 브랜드를 바꾼 이유(지난달 알레르기 반응 문의 증가), 예약 앱 프로모션을 중단한 이유(재방문율이 오히려 낮아짐), 가격을 2,000원 올린 이유(임대료 인상과 전기요금 상승). 그 메모가 한 달이 지나자 작은 보고서가 됐다. “원장님, 지난번보다 설명이 명확하시네요.” 세무사의 말에 은주는 처음으로 어깨가 펴졌다. 제도의 변화는 보통 서울의 높은 빌딩에서 시작해, 좁은 골목에 도착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에 사람들의 삶은 이미 몇 번 바뀐다. 형벌 중심에서 행정지도나 과태료 중심으로 옮겨간다면, 제일 먼저 달라질 건 두려움의 방향이다. 지금까진 ‘모르면 처벌받을 수 있다’가 공포였다면, 앞으로는 ‘알려줬는데도 안 지키면 책임진다’가 기준이 될 것이다. 공포는 줄고 책임은 선명해진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알려주는 시스템이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 알림을 받고,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갖춰지지 않으면, 형벌을 줄이는 정책은 오히려 혼란을 낳을 수도 있다. 단속은 줄었는데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모르니, 오히려 준법의 기준이 흐려지는 역설 말이다. 그래서 행정은 읽기 쉬워야 한다. 간판을 바꾸면 어디에 무엇을 제출하는지, 누구에게 전화하면 되는지, 제출 서류는 몇 장이어야 하는지, 예시 양식은 어디 있는지, 실패하면 어떤 단계로 넘어가는지. 복잡한 법률 용어를 평이한 문장으로 풀어 ‘사장님의 하루’를 따라가듯 안내해야 한다. 은주는 상권 커뮤니티에 ‘행정 알림’ 채널을 만들었다. 미용업협회의 뉴스레터, 구청 공지, 메신저 단체방의 입소문을 한곳으로 모았다. 누군가가 신고서를 올리면, 다른 사람이 옆에 샘플을 덧붙인다. “이 칸엔 임대차계약서 주소를 쓰세요.”, “사업자등록 정정은 홈택스 여기서.” 작은 상호부조의 기술이, 큰 법을 움직이는 데 걸리는 시간을 버텨준다. 제도가 한 달 뒤 바뀌든, 내년 정기국회에서 손질되든, 가게는 오늘도 문을 열어야 하니까. 배임죄 논쟁의 한 가운데엔 ‘경영판단의 원칙’이 있다. 사후적으로 손해가 발생했더라도, 당시 합리적 정보에 기초해 선의로 내린 결정이면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취지다. 대기업 뉴스에서 주로 등장하지만, 사실 이 원칙은 동네 사장에게 더 절실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판단은 더 적은 정보, 더 큰 불확실성, 더 좁은 자금 여력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밀가루 가격이 올랐을 때 메뉴를 줄일지, 배달을 접고 홀 맛집을 노릴지, 저가형 염색약으로 바꿀지 프리미엄으로 버틸지. 어느 길을 고르든 누군가에겐 ‘잘못된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때 우리를 지켜주는 건 정답이 아니라 절차다. 정보를 모으고, 이해당사자와 상의하고, 대안을 비교하고, 기록을 남기는 절차. 그 절차가 있으면 리스크는 손실로만 남지 않는다. 학습이 되고, 다음 선택의 기반이 된다. 법이 보호하는 건 바로 그 절차의 진정성이다. 은주는 직원 두 명과 함께 작은 회의를 정례화했다. 이름하여 ‘30분 경영판단’. 매주 화요일, 커피 한 잔씩 들고 가게 문을 열기 전, 지난 주의 고민과 이번 주의 선택지를 꺼내놓는다. “손님들이 주차 불편을 많이 이야기해요. 근처 주차장 제휴를 할까요?” “원가가 올라서 염색 가격을 조정해야 할까요?” 각 안건 옆엔 ‘자료’라는 칸이 있다. 고객 후기 스크린샷, 전기요금 고지서, 인근 시세 표. 그리고 마지막 줄엔 이렇게 적는다. “우리는 이 선택을 왜 했는가.” 놀랍게도 이 30분은 직원들의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효율을 위해서만 존재하던 가게의 일이, 함께 결정하는 공동의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혹시 나중에 누군가 이 결정을 문제 삼아도, 그들은 주눅 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그 흔적을 남겼으니까.

한편으로, 경미한 행정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이 줄어든다 해도, ‘알아야 면장’이라는 말은 여전히 진리다. 모르면 다시 실수한다. 소상공인에게 공부란 별도의 시간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그 자체여야 한다. 예를 들면 간판을 바꾸기 전에는 ‘체크’라는 단계를 반드시 거친다. 간판 디자인 파일을 열어보는 대신, 구청 위생과 사이트를 먼저 열어본다. 포스 업데이트를 누르기 전에 라이선스 조항을 확인한다. 사업자등록 정정을 홈택스에서 누르면, 곧바로 연동된 예약 앱과 카드사에 명칭 변경 서류를 보낸다. 일이 생기면 곧바로 연결된 일을 묶어 끝내는 습관, 이건 행정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저렴한 보험이다. 보험료는 약간의 시간과, ‘먼저 확인하기’라는 작은 인내다. 민사책임 논의도 우리 삶과 맞닿아 있다. 미성년자 출입, 알레르기 고지, 환불 규정, 개인정보 보호 같은 영역에서 소상공인은 순간의 판단으로 분쟁의 당사자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표준화’다. 표준 약관을 그대로 붙이란 말이 아니다. 내 가게의 실제 운영 방식에 맞게 문장을 손질하고, 종업원의 언어로 다시 번역해야 한다. “환불은 안 됩니다” 대신 “시술 특성상 염색 후에는 모발 손상 우려로 환불이 어렵습니다. 다만 시술 3일 이내 색상 보정 1회를 무상으로 진행합니다.” 같은 문장은 갈등을 줄인다.

법이 우리 편이 되기 전에, 문장이 우리 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문장을 제대로 전달하는 루틴—예약 전 고지, 계산대 앞 안내문, 카카오채널 자동응답—이 있으면, 분쟁의 민사책임은 한층 가벼워진다. 법은 뒤에서 오고, 문장은 앞에서 막는다. 그렇다면, 제도가 바뀌면 무엇이 달라질까. 이상적으로는 이렇다. 경미한 누락과 지연에 대해 형벌 대신 개선의 시간을 준다. 형사처벌이 필요한 영역은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고의적 은폐, 반복적 위반, 타인의 재산을 침해하는 행위는 더 무겁게 다룬다. 소상공인은 ‘이건 하지 말아야 한다’의 붉은 선을 명확히 본다. 동시에 행정은 변화를 따라가는 속도를 높인다. 로봇 센서를 하나 바꾼다고 전 인증을 처음부터 다시 받게 하지 않고, 핵심 위험요소가 변했는지를 중심으로 심사한다. 합리성에 기초한 규정은 혁신과 안전을 동시에 잡는다. 그 사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뀐 규정이 오기 전에 우리의 습관을 바꾸는 일이다. 기록하고, 고지하고, 점검하고, 협의하는 습관. 제도가 좋아질수록 이 습관은 더 큰 효과를 낸다.

제도가 부족하더라도 이 습관은 우리를 지켜준다. 은주는 그날 저녁, 손님이 끊긴 가게에서 거울을 닦다가 문득 생각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내 일의 방식뿐이구나.’ 그녀는 벽에 작은 보드를 붙였다. 제목은 ‘이번 주 변경사항’. 가격표 글씨 크기 조정, 샴푸 재고 업체 교체, 상호 변경 신고 보완 제출 완료, 직원별 교육 시간 계획. 보드는 한 주가 지나면 사진으로 찍어 클라우드에 저장된다. 다음 주엔 새 보드. 이건 아무도 시키지 않은 행정이고,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자율점검이다. 하지만 몇 달 뒤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녀는 미소 지으며 앨범을 열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일합니다.” 그 말은 법정에서의 변명이 아니라, 고객에게 하는 약속이기도 하다. 변화의 신호는 이미 울렸다. 텔레비전 뉴스 속 여의도의 말들이 우리 동네와 무관해 보이던 시대가 아니다. 전과 한 줄이 인생을 바꾸던 무서운 제도를, 실수에 관대하고 고의에 엄격한 제도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누군가는 느릴 것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미흡하다 말하겠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갖는 일이다. 법을 기다리며 멈춰 서지 말고, 법을 앞지르는 일하는 방식을 스스로 만들자.

세상은 늘 법보다 빠르고, 가게는 늘 세상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당신의 가게엔 오늘 어떤 변화가 있었나. 작은 것 하나면 충분하다. 간판 조명 타이머를 30분 앞당겼다면, 왜 그렇게 했는지 적어두자. 포인트 적립 문구를 바꿨다면, 어떤 민원이 줄었는지 메모하자. 예약 앱에 올린 사진 한 장을 바꿨다면, 그 전과 클릭률을 비교해보자. 이 모든 것이 당신의 경영판단을 지켜줄 체온 같은 기록이 된다. 언젠가 더 합리적인 제도가 도착했을 때, 그 기록은 제도와 정확히 맞물려 당신의 편이 될 것이다. 나도, 은주도, 경수도 오늘 할 수 있는 건 결국 같다. 내 일을 조금 더 투명하게, 조금 더 설명 가능하게, 조금 더 함께 결정하는 것.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면, 우리는 어느새 더 안전한 가게, 더 단단한 일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주 보드에 하나 더 적자. “이번 주, 우리가 지킨 원칙: 합리, 기록, 고지.” 이것이면 된다. 이번 주에 딱 하나, 당신의 가게에 붙일 새로운 습관을 정해보자. 그것이 법보다 빠르게 당신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