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10분, 미콜라이우의 골목마다 아직 물안개가 남아 있을 시간에 첫 번째 경보 사이렌이 울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창문 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이번에도 머물 것인가, 내려갈 것인가’를 잠깐 계산한다. 두 주 전까지만 해도 지하실 문을 여는 손길이 빨랐지만, 요즘은 커피포트를 누르고 창문을 살짝 닫는 데서 그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열 발 넘게 연쇄로 떨어진 미사일이 산업단지와 대학, 상점가를 긁어 내렸다. 검은 연기가 도시 위로 천천히 펼쳐지는 동안, 텔레그램 채널과 시청 라디오, 비상 앱이 동시에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지금은 ‘괜찮겠지’가 아니라 ‘피해야 한다’는 때입니다.” 전쟁의 일상성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어깨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문장. 그 문장과 거의 같은 시간이 겹치듯, 키이우에서는 더 무거운 뉴스가 번개처럼 지나갔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검찰총장과 국내정보기관 수장을 전격 해임했다는 발표였다. 국가안보의 뿌리인 두 자리. 그 결정의 배경에는 내부자 연루 가능성을 겨냥한 반역 수사 651건, 점령지에 남아 적을 돕는 직원이 수십 명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이야기의 표면은 정치 뉴스처럼 보이지만, 제가 이 장면을 오래 들여다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위기 상황에서 한 조직이 자기 살을 베듯 구조를 바꾸는 선택, 말과 행동의 간격을 줄이는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을 시민과 세계에게 어떻게 설명하는가. 소상공인 매거진의 지면에서 이런 세계정세를 꺼내 들 때, 우리는 늘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 큰 얘기가 우리 작은 가게와 팀에 무슨 상관이죠?” 상관이 있다. 상관이 너무 많다. 위기란 규모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대륙의 전쟁이든 동네의 매출 급감이든, 똑같이 사람들이 망설이고, 시스템이 흔들리고, 리더가 결정을 내리는 장면을 만든다. 그때 필요한 언어와 태도, 조직의 근육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먼저 리더십에 관한 장면부터. 젤렌스키의 결정은 두 가지 신호를 동시에 보냈다. 하나는 단호함, 다른 하나는 설명 책임이다. 그는 해임 직후 짧은 포고문으로 사안을 알리고, 곧바로 대국민 연설에서 “국가 안보의 뿌리”를 언급하며 수사 숫자를 공개했다. 리더가 친분과 경력, 공적 이미지를 넘어 성과와 위험을 기준으로 인사를 조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 앞에서, 그는 ‘그래야 한다’에 가까운 답을 택했다. 우리 동네 가게 수준으로 옮겨 보면, 오래 함께한 매니저의 실수와 조직 내 느슨함이 반복될 때, 우리는 대체로 눈을 감는다. 손님 앞에서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아서, 대체 인력이 마땅치 않아서, 혹은 “이 사람 말고 누가 있어”라는 마음 때문에. 하지만 위기의 본질은 작은 틈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전쟁은 자주 보여준다. 배달앱 리뷰가 이상하게 줄어드는 시점, 재고 장부와 실제가 어긋나는 느낌, 교대 스케줄이 자꾸 구멍 나는 주간—이런 작은 이상 징후가 모여 큰 새는 구멍을 만든다.

해임이 능사는 아니지만, 원인과 책임, 구조를 분명히 드러내고 새 체계를 시험하는 ‘한 번의 큰 수선’이 필요한 때가 있다. 둘째, 내부자 리스크의 관리다. 우크라이나 국내정보기관 SBU는 2만7천 명 규모로 유럽 최대급이라고 한다. 몸집이 크면 쉼표가 늘어난다. 전달과 보고에 붙는 작은 주석과 단서가 늘어나고, 그 사이로 책임이 흐려진다. 소상공인 조직은 반대로 몸집이 작다. 그래서 우리는 안심한다. “우리야 다 알지.” 그러나 작은 만큼 더 쉽게 ‘사람 의존’ 구조가 된다. 카운터를 그 사람이 쥐고 있고, 거래처 가격표를 그 사람이 가지고 있고, 고객 불만 DM을 그 사람이 열람한다. 이건 정보의 집중이자 동시에 리스크의 집중이다. 내부자 리스크는 배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한 번쯤 금고 비밀번호처럼 민감한 운영 지표를 이중화하고, 소유자 대신 ‘두 사람이 교차로 확인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리뷰 응답과 반품 승인은 서로 다른 손에서, 카드 매출 정산과 현금 시재 점검은 교차로. 전쟁이 알려준 사실은 이것이다.

최전선의 장병이 강해도, 후방의 한 구멍이 전체를 흔든다. 우리에게는 카운터, 창고 키, 포스 결제권한 같은 후방이 있다. 셋째, 커뮤니케이션의 방식. 미콜라이우의 경보 방송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의 시민들을 다시 지하로 끌어내리기 위해 문장을 바꿨다. “제발 신호를 무시하지 마세요.” 경고의 피로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의 어조에 반응한다. 가게 운영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환불 정책을 공지하지만, 계속 같은 질문이 오고 분쟁이 반복된다면, 그때 바꿔야 하는 건 글자량이 아니다. 어조와 순서다. “다음의 경우에만 환불됩니다”가 아니라 “당신이 걱정할 일을 줄이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겠습니다.”로. 우리는 위공지침을 과하게 딱딱하고 길게 쓴다. 전쟁 중에도 여전히 사람이 읽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밤마다 젤렌스키가 짧고 반복 가능한 문장으로 상황을 설명하듯, 우리도 고객과 직원에게 같은 메시지를 거의 같은 말로 전달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바꾸는 건 이것, 이유는 이것, 기간은 여기까지” 같은 리듬.

넷째, 장기전의 체력 분배. 동부 전선의 병사들이 말하던 건 단순했다. “그들은 포탄이 많다. 우리는 새 장비가 오면 버틴다.” 이 말은 두 가지로 들린다. ‘상대가 많은 것을 가졌을 때 나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와 ‘원거리에서 게임을 바꾸는 도구가 올 때까지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 소상공인에게는 포탄 대신 원자재와 현금흐름이 있다. 원두와 고기, 밀가루 가격이 오르거나, 여름 전기요금이 튀면, 우리의 포는 갑자기 짧아진다. 장기전의 키워드는 체력과 거리다. 가격을 함부로 못 올리는 시장에서 이익을 지키려면, 멀리 날아가는 한 방이 필요하다. 그것은 새로운 판매 채널일 수도, 구독제의 도입일 수도, 객단가를 끌어올릴 번들 상품일 수도 있다. 당장 내일의 정산을 위해 오늘 손님을 더 받는 방향만 바라보면, 틀림없이 지친다. 우크라이나가 원거리 타격 장비를 기다리는 사이, 현장을 버티게 한 것은 엄폐와 기동, 연락망이었다. 우리에게 엄폐는 비상예산이고, 기동은 SKU 축소이며, 연락망은 핵심 고객 명단이다. 모자란 체력을 채워줄 ‘먼 거리의 한 방’을 준비하는 동안, 눈앞의 전장을 정리하는 일은 지루해 보여도 생존을 만든다. 다섯째, 연합의 정치.

G7과 G20에서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를 논의하는 장면은 비즈니스의 연합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수준의 연합은 지역 상권의 공동 마케팅, 공동구매, 플랫폼 내 카테고리 로비 정도일지 모른다. 그러나 원리는 같다. ‘뜻이 조금씩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최소 합의를 만들 것인가.’ 가격 상한제가 작동하려면, 핵심 운송과 보험의 규칙을 바꾸는 공동선이 필요하다. 가게의 협력도 비슷하다. 배달 대행사와의 수수료 협상, 건물주와의 관리비 조정, 동네 업체들과의 공동행사—모두 각자의 이익이 다르고 타이밍이 어긋난다. 연합의 정치는 수사나 도덕으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사람마다 ‘이익이 생기는 지점’을 정확히 그려주어야 한다. “이 캠페인을 함께하면 당신 가게의 오후 3\~5시 공백을 채울 수 있습니다”라는 식의 숫자와 근거. 전쟁이 우리에게 가르친 건, 국제 연합도 결국 ‘구체적인 비용과 편익 표’ 위에서 움직인다는 것. 우리도 표를 그려야 한다. 여섯째, 상실의 이야기와 서비스의 윤리. 비니차에서 4살 아이의 장례식 장면이 전 세계를 울렸던 건, 전쟁의 숫자 뒤에 있는 구체적인 삶을 직시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면 직후, 젤렌스키가 “경보를 무시하지 말라”고 다시 말했을 때, 사람들은 단순히 당부가 아니라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이런 삶’이라는 선언으로 들었다.

우리 업에서 윤리라는 말은 종종 과장처럼 들린다. 그러나 서비스는 결국 사람의 얼굴을 매일 보는 일이다. 고객의 문제를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는 직원에게 리더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공감이 낭비되지 않도록 제도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환불을 더 빨리, 불만을 더 투명하게, 실수를 더 솔직하게. 슬픔을 소비하지 않고, 슬픔을 줄이는 방향으로. 일곱째, 교육과 가치의 프레이밍. 러시아가 학교 교육을 통해 ‘전통’과 ‘재탄생’을 강조하는 움직임을 본다면, 우리는 거꾸로 묻게 된다. 우리 팀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신입에게, 파트타이머에게, 시즌 아르바이트에게, 우리는 어떤 이야기로 일을 설명하는가. “이건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로 끝나는 교육은 위기 앞에서 부서진다. “우리가 하는 이 작은 동작 하나가 손님에게 어떤 좋은 결과를 주는지”로 설명하는 교육만이 산다. 매일 아침 국기 게양식처럼 형식만 반복하는 순간, 조직은 굳는다. 그러나 매일 아침 5분, 어제 배운 한 가지를 실험한 사례를 나누는 순간, 조직은 살아난다.

여덟째, 설득의 현장성. 미콜라이우에서 적십자 자원봉사자가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이야기는 마음을 잡아챈다. 소를 두고 떠날 수 없다는 이에게, 집에 공들였다는 이에게, 결국 사람들은 창문이 두 번 깨진 뒤에야 움직였다고 한다. 우리는 고객과 동료를 설득할 때, 바로 그 현장을 상상하지 않는다. 우리도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는다. 그러니 새로운 메뉴를 도입하고, 영업시간을 바꾸고, 약관을 손볼 때, 책상 위 문장만 바꾸지 말고 ‘현장 설득’을 준비하자. 사장 본인의 얼굴이 보이도록, 동네 단골을 직접 만나도록, 작은 선물과 함께 변화를 설명하도록. 늦게 움직이는 것은 죄가 아니라 인간이고, 늦게라도 움직이게 돕는 것이 프로다. 아홉째, 인력의 존엄과 포로. 전선에서 잡힌 기자이자 인권운동가의 사연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직업의 윤리와 시민의 의무 사이에서 인간은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가. 우리 일터의 버전으로 말하자면, 사람은 모두 서사가 있고, 그 서사를 존중할 때 더 오래 함께한다. 출근이 잦아지는 학기 초, 가족 돌봄으로 갑자기 휴가가 필요한 주말, 그때 우리가 보여주는 태도는 숫자로 환원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재무제표를 바꾼다.

위기는 사람을 소모품으로 만들고 싶은 유혹을 가져온다. 매출이 떨어지는 달에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전쟁의 서사는 정반대를 이야기한다. 사람을 지키는 조직이 살아남는다. 장비와 탄약은 돈으로 사지만, 사기를 돈으로 살 수 없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당신과 나의 시간. 아라비아의 호텔에서 미국 대통령이 말한 ‘공백을 두지 않겠다’는 문장은, 대국의 게임처럼 보이지만 작은 상점의 벽에도 걸어둘 만하다. 공백, 즉 비어 있는 시간과 규범과 관계가 만들어내는 구멍. 우리는 그 공백을 채우며 산다. 메뉴 사이의 공백을 채우는 사이드, 손님과 손님 사이의 공백을 채우는 인사, 가게와 동네 사이의 공백을 채우는 행사. 전쟁의 뉴스가 귀에 익숙해지고, 경보가 배경음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에 유혹된다. 그러나 진짜 정상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드는 것이다. 해임과 임명, 수사와 설명, 경보와 대피, 장례와 약속—이 모든 장면은 결국 한 문장으로 수렴한다.

“다음에는 덜 다치자.” 당신이 이번 주에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은 아마 이 정도일 것이다. 장부의 한 항목을 ‘사람 의존’에서 ‘프로세스 의존’으로 옮기는 것. 환불 안내문의 첫 문장을 바꾸는 것. 핵심 고객 20명의 이름을 적고 명절 전에 전할 말을 미리 써두는 것. 포스 권한을 두 사람이 교차로 확인하게 설정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팀 앞에서 말과 행동의 간격을 조금 줄이는 것이다. “이번 달엔 이렇게 바꿉니다. 이유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내 자리에서도 한 가지를 실제로 바꾸는 것. 미콜라이우의 검은 연기가 잠시 걷히는 순간처럼, 우리 가게의 공기에도 작은 맑음이 스민다. 위기는 우리가 무엇을 지키는지 묻고, 작은 조직일수록 더 정확히 대답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을 지키고, 서로의 시간을 지키고, 일상의 리듬을 지킨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다음 경보가 울릴 때 우리는 조금 더 빠르게, 그러나 덜 두려운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