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문을 열자마자 들이닥친 건 손님보다도 먼저 도착한 화면의 말들이었다. 예약 메시지, 배송 문의, 리뷰 알림. 김포의 작은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장은 늘 그렇듯 손에 밀대 대신 스마트폰을 쥔다. 밤사이 쌓인 DM 속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한 줄짜리 리뷰였다. “찐맛집 ㅇㅈ.” 고맙지만 묘하게 허전한 문장. 사장님은 잠깐 웃고, 곧바로 오늘의 공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신메뉴 ‘자두 크럼블 타르트’ 나왔어요.” 곧바로 자동 교정이 ‘자두크럼블’로 붙여 쓰길 권한다. 이모지는 세 개가 깜박이며 더 추가하라고 유혹한다. 그 순간 사장님은 멈칫한다. 오늘 나는 어떤 한글로 가게의 하루를 시작할 것인가. 가게를 한다는 건 결국 말로 영업하는 일이다. 손님은 재료와 가격표보다 먼저 사장님의 말투와 문장으로 가게의 온도를 가늠한다.

똑같이 달콤한 타르트라도 “겉은 바삭, 속은 촉촉”이라고 쓰면 혀끝의 풍경이 떠오르고, “수제 타르트 판매”라고 쓰면 행정 문서가 된다. 디지털 화면은 더 냉정하다. 3초 안에 지나친다. 클릭을 멈추게 하는 건 문장이고, 기억을 남기는 건 말맛이다. 한글은 그 말맛의 그릇이다. 그릇을 허술하게 만들면 아무리 좋은 재료도 흘러내린다. 요즘 사장님들 사이에서 “온라인 감성”이란 말이 유행이지만, 감성은 유통기한이 짧다. 오늘의 ‘짤’은 내일의 구식이 된다. 대신 오래가는 건 리듬과 질서다. 가게 소개 글을 세 문장으로 정리해 보자. 첫 문장은 인사, 둘째는 약속, 셋째는 초대. “안녕하세요, 동네 오븐을 지키는 ○○입니다.”라고 시작하면 사람 냄새가 난다.

“우리는 제철과 정직을 굽습니다.”라고 약속하면 가치가 선다. “오늘 오후 3시, 첫 20분은 향이 가장 진합니다. 커피 한 잔 들고 구경 오세요.”라고 초대하면 발걸음이 생긴다. 템포를 만들면 플랫폼이 바뀌어도, 유행이 가도 흔들리지 않는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예의다. ‘예의’는 부담스럽지 않게 오래 기억된다. 가령 메뉴 이름을 ‘라즈베리’와 ‘라즈베리’ 중 무엇으로 쓸지, ‘생크림’인지 ‘생 크림’인지 고민하는 순간이 언어 감수성의 출발점이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일관성은 지키자. 오늘은 ‘생크림’ 내일은 ‘생 크림’이면 손님은 맛보다 혼란을 먼저 삼킨다. 메뉴판, 포장 스티커, 게시물 설명, 영수증까지 같은 규칙이 통하도록 작은 메모장을 만들어 두면 좋다. 그것이 이 가게만의 ‘문장 레시피’다.

사투리와 구어는 결함이 아니라 개성이다. 서울식 문장으로 단정하게 서 있다가 계산대에서는 “오늘은 많이 달아부렀어요” 같은 한마디가 툭 튀어나오는 가게가 있다. 그런 말은 지역과 사람을 붙잡는다. 다만 화면 위에서는 과유불급을 조심하자. 한 문장에 방언 두 스푼이면 향취, 다섯 스푼이면 난해함이 된다. 사투리는 강조나 마지막 리듬에 슬쩍 얹는 양념처럼 쓰면 푹신하다. “오늘은 바삭, 내일은 촉촉할 수도 있습니더.” 이런 결말은 웃음을 남긴다. 이모지는 조명 스탠드다. 켜면 따뜻해지지만 과하면 눈이 부시다. 오프닝에 하나, 본문에 두어 개 정도가 화면의 호흡을 맞춘다. 해시태그는 표지판이다. 손님이 찾아들어오는 길을 닿게 한다.

브랜드 해시태그 하나, 지역명 하나, 품목 하나를 기본으로 붙이고, 유행 태그는 도우미 정도로 다룬다. 길은 늘 약속된 곳에 있어야 다음에도 찾는다. “사장님, 배송은 어느 택배사 쓰세요?” 같은 DM은 매일 반복된다. 그 답장에도 목소리가 있다. “네, ○○택배예요.”와 “네, 오늘도 ○○택배가 조심스레 모시러 옵니다.”의 인상은 다르다. 질문과 답변을 모아 작은 말투 사전을 만들어 보자. 환불, 교환, 재고, 배송, 원산지 같은 민감한 주제일수록 더 정중하고 부드럽게. “처리하겠습니다” 대신 “바로 도와드릴게요”라고 쓰면 책임이 미루지 않고 다가온다. 채팅봇을 쓰더라도 그 말투 사전을 학습시키면 기계가 아니라 가게가 대답하는 느낌이 난다. 오프라인 간판과 온라인 썸네일의 거리는 멀지 않다. 글자를 크게, 줄간을 넉넉히, 자음과 모음의 여백을 살린다면 3미터에서 메뉴판이 읽히고, 3초 안에 피드에서 멈춘다. 숫자도 말이다.

5000원보다 5,000원이 눈에 걸린다. ‘오늘만’과 ‘오늘’의 시간감도 다르다. ‘오늘만’은 조급하고, ‘오늘’은 산뜻하다. 글꼴은 캐릭터가 아니라 온도다. 단단한 고딕은 성실, 부드러운 명조는 정성, 손글씨는 친밀. 하나를 고르고 80%는 그 글꼴로 통일해 보라. 나머지 20%에만 변주를 준다. 포스터와 스토리, 패키지와 전단이 서로를 닮아가면 신뢰가 쌓인다. 리뷰는 손님의 언어로 쓰인 당신의 광고다. “맛있어요”보다 “겉은 설탕이 보슬거리는데 속은 딱 살짝만 흐트러지는 느낌” 같은 문장이 다음 손님을 데려온다. 그 문장을 캐내려면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어떠셨어요?” 대신 “첫입에 떠오른 단어 하나만 적어주세요.” “누구와 먹으면 더 좋을까요?” “어떤 날에 생각날 것 같나요?” 리뷰 요청을 이렇게 바꾸면 고객의 언어가 살아난다.

그 말들을 모아 다음 게시물의 문장으로 되돌려주자. 손님이 쓴 말로 손님에게 다시 말하면, 가게의 목소리는 점점 사람처럼 자란다. 프로모션 문장에는 유혹과 품위가 함께 있어야 한다. 할인은 칼이 아니라 리본으로 묶여야 예쁘다. “주말 10% 세일”보다 “비 예보가 있어요. 비 오는 날은 따뜻함이 필요하죠. 주말엔 따뜻함 10% 더 얹겠습니다.”라고 쓰면 사유가 생긴다. 이유가 있는 할인은 덜 지치고 오래 간다. 재고 안내도 마찬가지다. “마감 임박” 대신 “오후 바람이 약해지면 타르트가 조금 더 단단해져요. 그때 마지막 판을 꺼냅니다.”라는 식의 예고는 품절조차 경험이 된다. AI 맞춤법 교정기와 번역기는 훌륭한 조력자다.

다만 편집장은 여전히 사장님이어야 한다. 교정기가 권하는 단어가 가게의 맛을 앗아갈 때가 있다. ‘버터 향’이 ‘버터 향기’로 바뀌며 지나치게 향수 광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땐 되돌리자. 기계의 정밀함을 빌리되, 사람의 촉을 남기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가게만의 어휘를 10개쯤 만들어 두자. 우리 가게는 ‘달콤’ 대신 ‘달달복덕’이라고 부른다든가, ‘포장’ 대신 ‘담아가기’라고 한다든가. 이 어휘들이 쌓이면 검색에서도, 기억에서도 고유한 자리를 얻는다. 직원의 말투도 문장 레시피로 연결해야 한다. 신규 알바생에게는 메뉴 만드는 법보다 먼저 가게의 인사말을 알려주자. “어서 오세요” 다음에 붙는 한 문장을 모두가 통일하면 매장은 음악처럼 들린다. “오늘은 어떤 하루 보내고 계세요?” “선물용이면 스티커를 다른 색으로 붙여드릴게요.” 같은 문장이 매장 동선과 서비스의 리듬을 만든다.

오프라인의 말이 온라인의 글로, 온라인의 글이 오프라인의 말로 서로 왕복해야 브랜드는 하나의 얼굴이 된다. 작은 상점일수록 한글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강력한 경쟁력이다. 사진을 새로 찍지 못해도, 예산이 넉넉지 않아도, 문장을 바꾸면 내일의 매출이 달라질 때가 있다. 오늘 당장 해볼 수 있는 건 이거다. 가게 소개 글의 첫 문장을 수정한다. 인사, 약속, 초대의 순서로 짧게 정리한다. 메뉴판에서 가장 잘 팔리고 싶은 세 가지 옆에 맛을 묘사하는 형용사를 한 개씩 붙인다. ‘달콤한’ 대신 ‘입안에서 바스락하는’, ‘진한’ 대신 ‘한 모금만으로도 조용해지는’. 마지막으로 리뷰 요청 문장을 세 줄 바꾼다. “첫입의 느낌, 누구와, 어느 날.” 그리고 일주일 뒤, 어떤 단어들이 돌아왔는지 확인한다. 그 단어들을 다음 주의 문장으로 이식한다.
사장님, 당신은 매일 반죽을 치대듯 문장을 반죽하고 있다. 그 반죽은 화면 위에서 굽혀져 고객의 마음 한 칸에 놓인다. 한글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기계다. 누르면 의미가 나오고, 붙이면 정서가 만들어진다. 기술은 계속 변하겠지만, 말은 언제나 사람에게 닿아야 한다. 오늘의 게시물을 올리기 전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자. 숨이 넘어가지 않는 리듬인지, 낯설지 않게 새로웠는지, 말끝에 예의가 남았는지. 그 세 가지를 통과한 문장은 플랫폼을 넘어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런 문장이 쌓일 때, 작은 가게의 브랜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그러나 오래 성장한다. 한글은 이미 당신의 손에 있다. 이제 남은 일은 잘 쓰는 것, 그리고 더 잘 쓰려는 마음을 내일도 잊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