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로 바스락, 장부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날짜를 묻던 직원이 페이지를 한 장 더 넘기자, 약속을 잡으려던 손님은 잠시 침묵했고, 그 침묵 사이로 식당 안의 소음이 들쑥날쑥 흘렀다. 고등학생이던 최훈민은 그 순간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세상이 RFID다, 모바일이다 떠들던 때였지만 정작 한 끼를 파는 현장에는 종이와 볼펜, 그리고 기억력만이 존재했다. “외식 산업은 커졌는데 관행은 그대로구나.” 그는 그 낡은 간극을 사업의 출발선으로 삼았다. 이후 그가 만든 건 테이블매니저였다. 멋진 기술을 앞세우기보다 매장의 전화를 먼저 붙잡았다. 발신자번호표시(CID)를 식당 전화기에 연결해 걸려오는 순간 손님의 이름과 이전 예약 기록, 마지막 방문일이 떠오르게 했다. 전화를 끊고 엑셀을 열고, 캘린더를 띄우고, 장부를 다시 뒤지는 동선을 한 화면 안에서 끝냈다.

예약일과 테이블을 실시간으로 배정하고, 노쇼 이력이 있는 손님은 미리 표시했다. 숫자는 솔직했다. 솔루션을 도입한 가게들의 노쇼 비중이 평균 71% 줄었다. “반응이 뜨거웠다”고 회상하지만, 처음부터 박수갈채가 쏟아진 건 아니다. 점주들에게 왜 안 쓰느냐고 물으면 “불편한 게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최훈민은 잠깐 멈춰 생각했다. 불편함이 없다는 말은 사실 “불편함을 비교해본 적이 없다”는 뜻에 가까웠다. 종이에 쓰던 때와 프로그램을 쓰는 지금을 직접 체험해봐야 차이가 몸에 남는다. 그래서 그는 기능을 늘리기보다 ‘첫 사용’을 설계하기로 한다.

일단 한 번 쓰면 돌아가기 어렵게. 그렇게 입구가 열리자 길은 생각보다 넓었다. 국내 레스토랑 2,000여 곳이 테이블매니저를 쓰기 시작했고, 피에프창·송추가마골·애슐리 같은 프랜차이즈도 합류했다. 계약 6개월이 지나 1년 연장을 택하는 비율이 높아진 건 가장 솔직한 만족의 지표였다. 그러나 최훈민은 거기서 또 한 번 멈춘다. “지금은 카카오톡으로 예약 안내가 오고, 예약금을 받는 게 익숙한 시대죠. 그런데 국내 레스토랑 온라인 예약률은 아직 20%가 채 안 됩니다.” 시장은 분명히 열려 있는데, 관성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그가 택한 방식은 ‘고객이 이미 있는 곳으로 들어가기’. 자체 앱을 만들지 않고, 카카오·네이버·구글맵, 카드사, 통신사 같은 사용자의 생활 플랫폼에 테이블매니저를 연결했다.

손님은 카카오톡에서 두세 번 터치하면 예약을 끝낸다. 설치도, 인증도 필요 없다. 그 단순함은 숫자에 반영됐다. 2021년 1분기 온라인 예약 11만 건. 전년 동기 3만 건에서 세 배 넘게 뛰었다. 같은 해 예약 건수는 매달 15% 이상 성장했다. 성장을 끌어당긴 또 하나는 AI였다. 테이블매니저는 레스토랑에서 축적한 1,800만 건의 고객·예약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 식당의 다음 주 화요일 7시는 얼마나 붐빌까’를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수요 예측 AI.

그리고 이 예측을 돈이 되는 형태로 꺼내놓았다. 빈자리를 예상하고 가격을 최적화해 제공하는 ‘예약상품권’이다. 얼리버드처럼 한 발 앞선 손님에게 합리적 가격을 제안하고, 가게는 공석을 최소화해 매출을 끌어올린다.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107개 매장에서 17억 원 이상의 추가 매출이 나왔다. 점주와 손님 모두가 ‘이득’을 경험하자 저항은 자연스레 줄었다. 기술은 결국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데이터가 증명했다. 상도 따라왔다. ‘도전. K-스타트업 2020’ 왕중왕전에서 특허청장상을 받았고, 인공지능 챔피언십에선 2년 연속 결선에 올라 BC카드·CGV의 과제를 AI로 풀어냈다.

화려한 로고의 벽에 트로피가 늘어갈수록, 그는 협업의 범위를 넓혔다. 지난 10월 신한카드의 전략적 투자로 디지털 예약 서비스와 데이터 기반 컨설팅, 예약 금융 서비스까지 상상할 수 있는 조합을 꿰어보기 시작했다. IBK기업은행의 창업 육성 플랫폼 ‘IBK창공’ 마포 3기에도 선발되어 법무·재무·인사 멘토링과 투자 네트워킹을 받았다. 결론은 단순했다. 외식은 시작이었고, 예약과 수요 예측이 필요한 산업은 훨씬 많다. 의료·법률·반려동물·뷰티·레저로 수평 확장해 ‘시간표와 사람’을 잇는 인프라가 되자. 해외 파트너십도 문을 두드리고 있다. 소상공인 독자가 여기서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까. 첫째, 기능 경쟁보다 ‘첫 경험’을 설계하라.

테이블매니저가 깨달았듯, 사람은 불편함을 언어로 설명하지 못한다. 차이는 몸으로 체험해야 인지된다. 그래서 회원가입 없이, 설치 없이, 익숙한 플랫폼에서 바로 결제·예약이 되게 해야 한다. 둘째, 고객이 있는 플랫폼을 활용하라. ‘우리 앱을 깔아주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이탈이 시작된다. 이미 지갑이 열려 있는 곳에서 버튼만 누르게 하라. 셋째, 데이터는 중간에 멈추지 말고 ‘현금화의 형태’까지 설계하라. 수요 예측이 정확하다는 사실만으로는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 빈자리의 가격을 다시 매기고, 고객의 손에 닿을 상품으로 만들 때 비로소 돈이 된다.

넷째, 공정한 이익 구조를 만들라. 예약상품권이 성공한 비밀은 ‘윈윈’에 있었다. 업주는 매출, 고객은 혜택. 어느 한쪽만 이기는 구조는 오래가지 못한다. 여전히 한국 레스토랑의 온라인 예약률은 20%에 못 미친다고 한다. 공란이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빈칸을 채우는 방식은 기술의 화려함보다 사람의 게으름을 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람이 게으르다는 말은 나쁜 뜻이 아니다. 설치가 귀찮고, 인증이 번거롭고, 전화 한 통이 습관인 것들을 인정하자는 뜻이다.

그러니 장부를 넘기며 예약받던 손을, 자연스럽게 화면으로 옮겨야 한다. 익숙한 톡에서, 익숙한 결제 버튼으로, 익숙한 안내 메시지로. 그렇게 한 번 편해지면, 그 다음은 알아서 굴러간다. 테이블매니저의 여정은 ‘기술을 팔지 말고 시간을 팔라’는 교과서 같은 결론을 남긴다. 종이를 뒤지던 시간, 노쇼로 허공을 응시하던 시간, 빈자리 때문에 멍하니 불을 끄던 시간을 모아 새로운 매출과 만족으로 바꿔주는 일. 접시가 부딪히고, 주방에서 팬이 달아오르는 그 생생한 현장에서, 기술은 항상 뒤에서 조용히 일해야 한다. 손님이 들어오고, 사장이 미소 짓고, 계산서에 숫자가 한 줄 더 늘어나는 순간에만, 기술은 슬쩍 자신의 흔적을 드러내면 된다. 마지막 장면을 다시 꺼내본다.

장부를 넘기던 소리. 그 사소한 소리가 만들어낸 창업의 시작. 지금 그 자리에는 전화가 울리면 화면이 반짝인다. 이름이 보이고, 이력이 뜬다. “다음 주 금요일 7시, 창가 자리로 예약 도와드릴게요.” 몇 번의 터치, 몇 마디의 말, 그리고 하나의 저녁이 완성된다. 소상공인에게 혁신은 멀리 있지 않다. 손님의 손에서 가장 가까운 버튼을, 당신이 먼저 준비하는 것. 그게 바로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테이블매니저식 문제 해결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