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의 공기가 약간 달아 있었다. 비가 올 듯 말 듯 고개를 든 구름 아래, 스페이스 S50 앞에 늘어선 줄이 골목의 리듬을 바꿨다. 투명한 PVC 가방, 캔뱃지, 일본어가 섞인 휴대폰 케이스—사전 예열된 팬들의 패션이 먼저 공연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 무대 뒤편에서 한 일본인이 담담히 말했다. “한국과 일본은 음악을 느끼는 감각이 비슷해지고 있어요.” 유니버설 뮤직 재팬의 아사이 다모쓰 디렉터. 그는 짧게 웃었다. 공유되는 문화가 닮아간다는 말은, 비즈니스 언어로 번역하면 시장의 마찰이 줄고 거래비용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즉, 당신 같은 동네 사장님에게 ‘기회’라는 말.

팝업스토어 ‘J-POP.ZIP’은 세 글자로 요약된다. 실험, 체험, 전파. 레이블이 큐레이션한 아티스트의 세계관이 공간으로 구현되는 순간, 온라인에서 얇게 소비되던 음악 취향이 손에 잡히는 소비로 전환된다. 올해도 일본 R\&B의 표정 크리스탈 케이, 색소폰의 숨결 도모아키 바바가 서고,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민수까지 합류한다. 일본 밴드 세카이노 오와리를 주제로 한 전시와 청음 공간이 더해지면, 장르는 다르지만 감상법은 하나로 수렴한다. “여기, 들어봐요.” 헤드폰을 서로 건네던 낯선 사람들이,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같은 리듬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건 스트리밍 그래프에 찍히지 않는, 현장의 온도다. 소상공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 가게가 플레이리스트에 오를 수 있느냐’다.

플레이리스트란 음악만을 말하지 않는다. 3일짜리 팝업으로 동네의 동선을 바꾸고, 굿즈와 전시로 체류 시간을 늘리고, 로컬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콘텐츠를 쌓는 일련의 구성 자체가 하나의 트랙이다. 올해 J-POP 흐름의 힌트는 명확하다. 2000년대의 강성 록 대신, 아이묭 같은 싱어송라이터와 R\&B, 시티팝, 그리고 ‘가사’에 무게가 실린다. 당신의 카페라면 낮에는 보컬 중심의 부드러운 플레이리스트로 글을 쓰거나 공부하는 손님을, 저녁엔 시티팝으로 잔을 기울이는 손님을 호출할 수 있다. 서점이라면 가사집과 일본 문학 코너를 입구 가까이에 배치하라. 비닐 속 레코드 몇 장과 카세트 플레이어 모형만으로도, ‘여기는 조용히 머무르는 곳’이라는 시그널이 선다. 팝업은 SNS 이벤트가 아니다.

‘가게 동선’이라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작업이다. 입구에는 스탬프를, 중앙에는 청음 테이블을, 가장 깊숙한 곳에는 포토 스폿을 둔다. 촬영 대기 줄은 회전율의 적이지만, 반대로 체류 시간을 만드는 동맹이기도 하다. 줄이 생기면 QR 대기권을 배포하고, 그 QR이 곧 뉴스레터 구독으로 이어지게 설계하라. “오늘 들은 곡, 내일 다시 들려드릴게요.”라는 DM 한 줄이 재방문을 약속한다. 굿즈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저작권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색상, 폰트, 상징을 요리하면 된다. 아티스트 사진 대신 타이포그래피와 트랙리스트, 팬덤이 공유하는 상징색을 활용한 머그, 스티커, 토트백.

가사 한 줄을 새기는 순간 권리의 세계가 열리니, 그 한 줄 대신 리듬을 새겨라. 예를 들어 곡의 BPM을 바코드처럼 시각화해 프린트하면, ‘안전하고도 아이디어 있는’ 굿즈가 된다. 협업의 문법도 바뀌고 있다. 일본 뮤지션과 한국 뮤지션이 같은 무대에서 서로의 곡을 커버하는 장면은 더 이상 특집 방송의 클라이맥스가 아니다. 일상적 콘텐츠다. 그래서 동네 가게의 콜라보도 ‘희소성’ 대신 ‘연결성’을 노려야 한다. 예를 들어, 바틀숍은 일본 브랜드와 한정 코롱을 만들되 향의 스토리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동시에 적어두고, 구매자에게 플레이리스트 QR을 건넨다. 베이커리는 아티스트의 도시에서 온 재료 한 가지를 골라 ‘도쿄와 성수 사이의 당도’를 표기한 디저트를 낸다.

바는 세트리스트를 칵테일 메뉴로 번역한다. 노벨브라이트의 다케나카 유다이가 한일 합동 경연 프로그램에 나왔듯, 방송이 연결한 다리를 동네에서 생활로 연장하는 셈이다. 실무의 디테일을 놓치면 감동은 오래가지 않는다. 첫째, 언어. 메뉴판과 안내문은 한글이 먼저, 일본어가 바로 뒤에 따라붙는 구조가 친절하다. 발음 표기를 괄호로 보태면 인증샷에 자연스레 노출된다. 둘째, 결제. 한국형 간편결제를 기본으로 하되 외국 카드 승인 실패에 대비해 결제 보조 단말을 준비한다.

셋째, 줄 관리. ‘포토는 1인 2컷, 30초’를 또박또박 적고 스태프가 웃는 얼굴로 안내한다. 넷째, 저작권. 음원 재생은 합법 스트리밍으로, 포스터는 레이블 제공물만 사용한다. 사진·영상 촬영 구역 외에는 촬영 금지 아이콘을 붙이되, 촬영 가능 구역은 조명·배경을 과하게 예쁘게 만들어 ‘여기서만 찍게’ 만든다. 다섯째, 커뮤니케이션. 후기 리그램은 빠르게, 문의 답변은 이모지 하나라도 따뜻하게. 음악 팬덤은 속도와 성의에 민감하다.

문화의 국경은 숫자보다 분위기로 먼저 움직인다. 일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는데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스무 살들이 있다면, 그건 시험점수의 일본어가 아니라 애니메이션·드라마·음악으로 축적된 생활 언어다. 그 층이 지갑을 열 때 필요한 건 애국심도, 정치적 담론도 아니다. 자신이 사랑한 장면을 더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마음. 당신은 그 마음의 보관소가 될 수 있다. 변하는 건 장르와 매체, 변하지 않는 건 ‘내 취향을 알아봐 주는 가게’에 대한 충성이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혐한·혐일 이슈가 불쑥 고개를 들 때, 당신의 가게가 그 전장에서 무기 없이 서 있어서는 안 된다.

원칙은 간단하다. 국기를 흔들지 말고, 음악을 이야기하라. 국가를 말하지 말고, 창작자를 호명하라. 댓글에 불씨가 보이면 냉정하게 지우고, 규정을 고정 게시물로 걸어두라. “우리의 언어는 음악과 환대”라는 문장 하나가 풍향을 바꾼다. 그리고 이건 진짜 사업 조언인데, 이벤트가 끝나면 데이터를 남겨라. 날짜·시간대별 방문자, 평균 체류, 객단가, 포토부스 이용률, QR 전환율. 이 다섯 가지만 있어도 다음 기획의 정확도가 확 올라간다.

감성은 오프라인에서, 최적화는 엑셀에서 완성된다. 아사이 디렉터가 말한 “공유하는 문화가 비슷해진다”는 감각은 이미 골목의 체온이 증명하고 있다. 3일짜리 팝업이 끝나도 그 온도는 남는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처음 듣던 노래를 집으로 가져갈 것이고, 누군가는 그날 찍은 사진을 프로필로 바꾸며 자기 취향의 좌표를 다시 찍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가게가 그 좌표 근처에 있다면, 다음 번 줄은 당신 문 앞에서 시작될지 모른다. 거창한 투자보다 필요한 건 작은 결심이다. 72시간 동안 음악을 가게에 초대해보라. 도시의 플레이리스트는 그렇게,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당신 쪽으로 스크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