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장사 한숨 돌릴 즈음, 휴대폰 알림에 “대통령, 한미 관세협상에 합리적 대안 요구”라는 문장이 번쩍 뜨면 사장님 마음도 같이 덜컥 내려앉죠. ‘정치 얘기겠지’ 하고 넘기려다도 계산대 위 원가표가 자꾸 떠오릅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바뀌는 말 한마디가 바로 다음 발주서의 단가와 납기, 그리고 고객의 재주문 의지로 이어지는 걸 우리는 몸으로 겪어왔으니까요. 이번 메시지의 핵심은 “이제 예전처럼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으로만 정리되지 않는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양쪽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되, 공급망에선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중국과의 관계도 관리하겠다는 기조가 읽힙니다. 이 말은 거창해 보이지만, 소상공인에게 내려오면 두 가지 과제로 번역돼요. 첫째, 관세와 통관 리스크의 상시화.

둘째, 조달·판매·정책의 ‘이중 트랙’ 운영입니다. 관세부터 볼까요. 협상이 길어지면 세율 자체가 곧바로 바뀌진 않더라도, 서류의 정밀도가 비용이 됩니다. HS코드 오기재, 원산지 소명 미흡, 부품 국적 혼재가 재검사와 지연을 부르고, 그 지연이 페널티와 반품으로 연결됩니다. 수출을 안 하더라도 수입 원자재 하나만으로도 타격은 현실이에요. 그래서 통관 서류는 ‘회계’가 아니라 ‘영업’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고객에게 제때, 그 품질로 전달되는 길목이니까요.

공급망은 ‘한 줄’이 아니라 ‘두 줄’이어야 합니다. 동일 사양을 납품해주는 협력사를 중국과 제3국으로 이원화하고, 미국 거래처가 요구하는 규격과 시험성적서는 미리 준비해 두세요. 납기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MOQ와 선적 스케줄 협상력이 떨어집니다. 반대로, 사전에 인증을 갖춘 업체는 주문이 몰릴 때 ‘안전한 대안’으로 먼저 호출됩니다. 작은 공방도 마찬가지예요. 포장재, 병뚜껑, 잉크처럼 사소한 소모품까지 대체 리스트를 만들어 두면 위기 때 버텨내는 탄력이 생깁니다. 환율은 뉴스보다 매출표에 먼저 찍힙니다.

정교한 헤지 상품이 부담스럽다면, 결제 통화를 분산하고, 납품가 산정에 기준환율과 변동밴드를 명시하는 것부터 해보세요. 달러 선결제 소액할인, 분기별 환율 재협상 조항 같은 ‘생활형 장치’가 실제로 분쟁을 줄입니다. 온라인 직구형 수출을 하신다면, 플랫폼 정산 통화와 카드 수수료까지 합친 실효환율을 따로 적어두시고요. 안보 이슈와 제재 논의는 당장 거래선이 바뀌는 버튼은 아닙니다. 하지만 심리는 환율을 흔들고, 환율은 곧 원가입니다. 해운·보험료의 미세한 상승이 소량 다품종 비즈니스에선 치명적이죠. 그래서 뉴스가 요란할수록 우리는 더 ‘지루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재고회전일을 낮추고, 현금흐름표를 주 단위로 당겨 보세요. 정치의 파도는 큽니다. 배를 키우긴 어렵지만, 무게중심을 낮추는 건 오늘 당장 가능합니다. 한편 정부가 성장 재부팅을 말한다는 것은 지원사업의 키워드가 정리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전환, 친환경 전환, 공급망 안전. 이 세 축에 닿는 프로젝트를 하나만 골라도 돋보기 효과가 생깁니다.

전자상거래 다국어 상세페이지 개편, 원산지 증빙 자동화, 포장재의 재활용 전환 같은 소규모 과제도 ‘큰 말’과 연결되면 선정 확률이 높아져요. 내 사업의 언어를 정책의 언어로 번역하는 연습, 꼭 해봅시다. 오늘 할 일 세 가지를 제안드릴게요. 우리 제품의 HS코드를 메모장에 적고, 한미 FTA 특혜 적용 시 필요한 원산지 요건을 딱 한 줄로 정리합니다. 주요 부품의 국적을 표로 만들어 누락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분기부터 적용할 결제조건 초안을 만들어 거래처 하나에 시험 적용을 요청합니다.

이 세 동작만으로도 불확실성 비용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성수의 한 가죽공방은 중국산 원단을 베트남에서 1차 가공해 들여오던 관행을 재점검했습니다. 관세사와 상의해 국내에서 부가가치가 얼마나 창출되는지, 원산지 표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표로 그려봤더니, 공정 순서만 바꿔도 통관 리스크와 클레임이 크게 줄었습니다. 리드타임은 이삼 일 늘었지만 반품률이 떨어지며 총비용이 낮아졌죠. 다리 놓기는 국가만의 일이 아닙니다. 공급망의 작은 교각을 우리 손으로 다시 세우는 것, 그게 우리 버전의 외교예요.

큰 뉴스는 늘 스크롤을 끝없이 밀어 올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가게를 지키는 힘은 언제나 작은 문장들에서 나옵니다. 규정 하나 더 읽고, 서류 한 줄 더 채우고, 전화 한 통 더 걸어 가능한 계획을 오늘로 당기는 것. 선택지가 ‘전부 아니면 전무’로 보일 때, 우리에게는 항상 중간 지점이 있습니다. 손님이 다시 오게 만드는 일상의 정교함. 그게 소상공인의 최고의 외교이자, 가장 현실적인 성장 전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