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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 Biz1hour

투자연계 패션 육성 프로그램의 실무 과정을 현장 시선으로 정리. 진단→역량강화→운영개선→IR·네트워킹까지, 실전 지표와 체크리스트를 강조합니다.

·18분 읽기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 Biz1hour

동대문 새벽 공기를 뚫고 돌아온 사장님이 작은 사무실 불을 켰을 때, 휴대폰 알림이 먼저 울렸다. “투자연계형 패션 기업 육성 프로그램 모집.” 낡은 책상 위로 라벨 프린터가 지지직 소리를 내고, 천 조각과 샘플 신발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그는 커피 믹스를 털어 넣으며 제목을 다시 읽었다. 단순한 지원이 아니란다. 기업 진단부터 역량 강화, 투자 밋업, 그리고 연말 DDP ‘런웨이투서울(RTS)’ 런웨이까지 이어지는 풀코스. 그 문장을 세 번 읽고서야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좋아, 이번엔 쇼케이스로 끝나는 게 아니구나.” 이 프로그램의 출발점은 진단이다. 바이어에게 칭찬받는 핏, 인스타그램에 뜨거운 댓글, 공장과의 끈끈한 관계 같은 ‘감’이 아니라, 브랜드 역량과 시장성, 조직 운영을 차분히 수치로 들여다보는 일. 무엇이 팔리고 무엇이 남는지, 생산 리드타임과 반품률이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 팀이 어디에서 병목을 맞는지 표면으로 끌어올린다. 사장님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창고엔 리오더를 못 받은 인기 품목 대신, 시즌을 놓친 재고가 더 많았다. “숫자는 정직하네요.” 컨설턴트가 웃었다.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brand diagnosis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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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만큼, 해결책도 명확해지죠.” 진단 다음엔 근육을 붙이는 과정이 온다. 브랜딩, 운영, 마케팅, 투자 전략까지 이어지는 교육과 워크숍. 그는 브랜딩 세션에서 첫 페이지를 고쳤다. ‘우리는 Y2K 무드의 스트리트’를 지우고 ‘도시의 밤 9시 이후를 위한 옷’으로 바꿨다. 타깃의 순간을 정의하자, 소재와 실루엣이 또렷해졌다. 운영 워크숍에선 생산 캘린더에 빨간 원을 그렸다. 리드타임은 줄이고, 컷 수는 다변화하고, 원부자재는 핵심만 선구매. 마케팅 세션에서는 채널 미션을 갈랐다. 인스타그램은 세계관, 라이브는 피팅과 가격, 자사몰은 구매 전환, 마켓플레이스는 신뢰의 간판. 같은 메시지를 네 군데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웠다. 멘토링은 더 날카롭다. 업계 선배 한 명이 그의 탁자 앞에 앉아 딱 세 가지를 물었다.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reorder protocol 관련 이미지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reorder protocol 관련 이미지

“당신의 히어로 SKU는 무엇이죠. 그 제품이 고객 인생에서 해결하는 문제는 뭔가요. 그리고 그걸 시스템으로 재현할 수 있나요?” 그는 대답했다. 오버사이즈 블루종, 퇴근 후 어깨에 걸치는 가벼움, 그리고… 여기서 막혔다. 시스템. 멘토는 생산 파트너 리스트에 별표를 쳤다. “RTS 전까지 리오더 프로토콜을 만듭시다. 발주–검수–입고–라이브까지의 시간을 도표로요. 무대는 반짝이지만, 그 뒤에서 움직이는 건 프로세스예요.” 투자자 앞에 서는 IR은 낯설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아예 문서 제작과 피칭을 함께 붙잡고 끌고 간다. 사장님은 첫 장에 룩북을 넣으려다 멈추었다. 멘토의 조언이 떠올랐다.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D2C 전략 관련 이미지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D2C 전략 관련 이미지

“첫 장은 ‘브랜드가 해결하는 문제’와 ‘왜 지금’입니다. 그 다음이 제품이고, 시장이고, 팀과 실행력이에요.” 그래서 그는 쇼핑몰 리뷰 2천 건을 한 장의 태그 클라우드로 요약했다. ‘가볍다’ ‘퇴근룩’ ‘비 오는 날’ ‘세탁해도 멀쩡’. 투자자는 매출 숫자뿐 아니라 재구매율, 반품 사유, 사이즈 커버리지, 재고 회전 같은 일상적 지표에 귀를 기울인다. 멀리 있는 성공담보다, 가까이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원한다. 이 프로그램의 다른 축은 네트워킹이다. 투자사, 대기업과 중견, 유통사까지 골고루 섞인 자리에서, 그는 명함을 어색하게 건넸다. 예전 같으면 “브랜드 운영하고 있어요”로 끝났을 말이, 이날은 달랐다. “우리는 ‘밤 9시 이후’를 위한 옷을 만듭니다. 오늘 미팅에서 찾는 파트너십은 리테일 테스트와 내년 상반기 캡슐 협업이에요.” 상대가 눈썹을 올렸다. 요청이 구체적이면 대화는 짧고 깊어진다. 투자 미팅에서도 마찬가지다.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Runway to Seoul 관련 이미지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Runway to Seoul 관련 이미지

그는 “우리의 유통 전략은 D2C 70, 리테일 30, 내년에는 팝업을 테스트해 50:50을 향해 갑니다”라고 말했고, 그 옆 페이지엔 3개월 단위 실행 계획을 붙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패션은 스토리지만, 투자에선 스케줄이 스토리가 된다. 이 프로그램의 결정적 장면은 연말 DDP 쇼룸에서 열리는 ‘런웨이투서울(RTS)’ 전시와 패션쇼다. 런웨이는 한 번 빛나고 사라지는 쇼가 아니다. 투자자, 유통사, 바이어 앞에서 브랜드의 세계관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가장 인간적인 IR이다. 모델이 무대를 직선으로 가르는 동안, 음악과 조명, 피스 간 간격, 심지어 의상 교체 템포까지 모든 것이 브랜드의 ‘운영 능력’을 말한다. 사장님은 올블랙 룩을 맨 앞에 배치하기로 했다. 그 다음은 블루, 마지막은 금속 액세서리로 반짝임을 더했다. “이 순서는 왜죠?” 연출팀이 물었다. “우린 간결함에서 태어나, 퇴근 후의 자유로 확장되고, 밤 도시에 녹아듭니다.” 관객의 눈은 해설을 듣기 전에도 그 흐름을 이해한다. 오픈 피칭데이는 또 하나의 무대다. 조명 아래에서 PPT를 넘기며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는 걸 느꼈다.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IR pitching 관련 이미지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IR pitching 관련 이미지

이유는 간단했다. 몇 달 동안 현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사이즈 교정표를 다시 만들고, 반품 사유 상위 세 가지를 제품 개선으로 연결했고, 라이브 방송은 요일에 따라 대본을 달리 짰다. “화요일은 출근길, 금요일은 퇴근길.” 그 문장을 들은 투자자의 펜이 멈췄다. 실행의 리듬은 말보다 설득력이 있다. 이 프로그램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트랙의 확장성이다. 의류, 신발, 가방, 주얼리 같은 제조·유통 기업뿐 아니라, 패션 유통 플랫폼, 콘텐츠·미디어, AI·빅데이터 기반 패션테크, 마케팅·브랜딩 에이전시, 심지어 뷰티·웰니스까지 패션과 연결 가능한 융·복합 기업이 함께 달린다. 런웨이 뒤편에선 데이터 엔지니어가 소매 예측 모델을 다듬고, 한쪽에선 에이전시가 인플루언서 시딩 캘린더를 짜며, 다른 한쪽에선 뷰티 브랜드가 캡슐 협업을 제안한다. 패션은 제품이 아니라 생태계라는 걸, 참가자 모두가 실감한다. 선정은 10개사 내외. 9월부터 12월까지 약 4개월.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production lead time 관련 이미지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production lead time 관련 이미지

숫자는 적을지 몰라도 밀도는 높다. 그는 지원서 마감일 오후 4시 57분에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다음 주 발표평가에서 들을 질문을 상상하며 밤을 새웠다. “차별점은?” “스케일은?” “팀의 빈칸은?” 그가 준비한 답은 솔직함이었다. “우린 아직 리테일 경험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팝업 3회와 입점 2곳을 소규모로 테스트해, 재고 회전과 사이즈 커버리지의 데이터를 쌓겠습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부터 채널 믹스를 조정하겠습니다.” 완벽 대신 학습을 약속하는 브랜드는 오히려 믿음을 준다. 프로그램이 열어주는 문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RTS 무대에서 브랜드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실루엣과 스타일뿐만이 아니다. 생산 파트너의 신뢰, 라이브 팀의 노하우, 물류의 민첩성, 데이터의 투명성까지 모두가 한 장면에 겹겹이 스며든다. 사장님은 리허설을 마치고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inventory turnover 관련 이미지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inventory turnover 관련 이미지

“이 무대는 카메라를 위한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회사인지 설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 많은 지원 사업이 ‘쇼’로 끝난다. 플래카드와 사진, 보도자료만 남고, 현장은 예전으로 돌아간다. 이 프로그램이 그와 달라 보였던 이유는 ‘끝에 무대가 있고, 무대를 위해 초반부터 현장을 바꾼다’는 점이었다. 진단은 런웨이를 위한 사전 작업이고, 교육은 룩을 제대로 걷게 하는 근육이며, 멘토링은 무대 사고를 줄이는 안전장치다. 투자 밋업은 다음 시즌의 조명과 음향을 미리 세팅해두는 일. 결국 한 편의 쇼를 완성하는 제작 프로세스가, 기업 성장의 프로세스와 포개진다. 사장님은 팀원들과 작은 약속을 했다. “우리는 RTS까지 세 가지를 지키자. 하나, 히어로 SKU를 더 명확히 한다. 둘, 리오더 프로토콜을 완성한다.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마케팅 channels 관련 이미지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마케팅 channels 관련 이미지

셋, 데이터룸을 깔끔하게 유지한다.” 첫째는 고객의 기억을 붙잡는 일, 둘째는 매출을 놓치지 않는 일, 셋째는 믿음을 쌓는 일이다. 그 약속을 지키는 동안, 자잘한 기적들이 일어났다. 반품 사유 상위권이었던 ‘소매 길이’가 순위 밖으로 밀려났고, 라이브 방송의 평균 시청 시간이 두 배로 늘었으며, 협업 제안 메일의 회신률이 상승했다. 숫자와 이야기가 동시에 좋아지는 순간, 브랜드는 비로소 ‘회사’가 된다. 신청 마감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여지는 남아 있다. 내년 공고를 기다리며 ‘우리의 밤 9시’를 정의하라. 고객의 하루에서 당신이 들어갈 틈을 문장 하나로 써보라. 그리고 창고 한 켠의 박스에 포스트잇을 붙여라. “이 제품이 해결한 문제는?” 그 답을 찾는 동안, 다음 RTS의 무대가 조금씩 당신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프로그램은 화려한 조명이지만, 브랜드를 데려다 무대 중앙에 세우는 건 결국 팀의 일상이다.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mentoring 관련 이미지
런웨이까지 이끄는 패션 진단실전 소매·유통 mentoring 관련 이미지

오늘의 진단, 이번 주의 개선, 다음 달의 테스트. 이 리듬을 타는 회사만이, 조명이 꺼진 뒤에도 관객을 데리고 나간다. 마지막 리허설이 끝나고, 그는 모델 한 명 한 명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소리 없는 박수처럼, 어깨를 토닥이며 지나갔다. DDP의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다 그는 문득 웃었다. 입구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몇 달 전과 달라 보였다. 옷이 바뀐 게 아니라, 걸음이 바뀌었다.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그는 이미 다음 시즌의 첫 페이지에 손을 얹고 있었다. RTS의 조명이 켜지면, 이 모든 과정이 10분으로 압축된다. 하지만 그 10분을 만든 건 4개월이고, 그 4개월을 만든 건 오늘의 한 줄이다. “우리는 밤 9시 이후를 위한 옷을 만든다.” 그리고 그 문장을, 이제는 누구 앞에서든 흔들림 없이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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