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 누리꿈스퀘어 혁신벤처센터의 유리문을 밀자, 사각형 로비를 둘러싼 사무실들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문턱을 넘은 순간부터 “여긴 일하라고 만든 공간이구나” 하는 기분이 드는 곳. 저는 담당자인 박태근 수석과 잠깐 눈을 맞추고, 입주사들과 인사를 나누며 현장을 함께 돌았습니다. 박 수석이 먼저 말문을 열었죠. “좋은 프로그램을 열심히 만들었는데도, 정작 창업자에겐 우선순위가 아니더라고요.” 그 한마디에 이 공간의 철학이 압축돼 있었습니다. 콘텐츠가 기획자의 신념을 닮듯, 스타트업을 돕는 서비스도 기획자의 관점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곳은 ‘우리 기준의 좋은 것’보다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을 우선에 두었습니다. 그 ‘필요’는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기한과 여건에 쫓기지 않고 마음껏 몰입할 수 있는 환경. 그래서 불필요한 행사와 형식은 과감히 덜어내고, 365일 24시간 열려 있는 깔끔한 사무실과 기본 경영지원, 장기 계약으로 안정감을 먼저 깔아줍니다. “노트북만 들고 와서 바로 시작하세요.” 안내문이 아니라 태도에 가까운 문장입니다. 입주사들은 서로를 “이웃집 숟가락 수도 아는” 사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로비를 중심으로 빙 둘러 앉은 구조 덕에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치고, 개발·디자인·제조 노하우가 오가며 즉흥적인 조언과 합작이 탄생합니다. 저는 한 팀이 다른 팀의 시제품 포장을 같이 잡아주고, 옆자리 창업자가 금세 세무 이슈를 풀어주는 장면을 봤어요. 대단한 워크숍보다 값진 순간이죠. 성과는 사람을 불러 모읍니다. 이곳을 거친 애드투페이퍼와 헬로네이처는 입주 기간 동안 투자를 유치했고, 디자인테크 스타트업 베이스디와 나날이 같은 회사들도 각자의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통계로 2008년 1만5천여 개였던 국내 스타트업 수가 2012년엔 2만8천여 개로 늘었는데, 붐의 한가운데서 이 공간은 ‘어떤 행사로 주목받을까’보다 ‘어떤 여백을 만들어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 관점 전환이 결국 소문이 되었고, 소문은 더 좋은 팀을 데려왔습니다. 지원 방식도 명료합니다. 빠르게 사업화할 수 있는 팀을 중심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시선에 점수를 줍니다. 심사는 벤처투자자들이 주도하고, 필요하면 기술전문가가 보완합니다. 돈과 시간이 실제로 도는 곳에 예산을 붙이는 태도죠. 예비 창업자에겐 창업지원금을, 초기 기업에겐 성장자금을 배정하고, 6개월에서 1년 사이 시제품 제작 비용과 법무·회계·지식재산 멘토링을 곁들입니다.

성공 CEO의 강연도 있지만, 강연이 목적이 되지 않게 조절합니다. 결국 이 모든 설계는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스타트업이 우리의 서비스 고객이다.” 여기서 소상공인인 여러분에게 건지고 싶은 교훈은 분명합니다. 첫째, 서비스도 콘텐츠입니다. 당신의 가게와 제품, 심지어 이벤트 안내문까지 기획자의 신념이 배어 나옵니다. 그러니 “내가 멋지다고 믿는 것”보다 “고객이 지금 가장 절실한 것”에 자원을 먼저 주세요.

둘째,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기가 품질을 만듭니다. 불필요한 프로모션과 의례를 걷어내고, 영업시간·결제·A/S처럼 고객이 자주 부딪히는 현실의 마찰을 낮추세요. 셋째, 공간은 전략입니다. 사람이 쉽게 마주치고, 정보가 오가며,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동선은 그 자체로 마케팅입니다. 넷째, 평판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옵니다. “어서 오세요.

노트북만 놓고 시작하세요.” 이 호흡이 단골을 만들고, 협업을 불러옵니다. 그날의 마지막 장면이 아직 선명합니다. 늦은 오후, 한 팀이 막 나온 시제품을 로비 탁자에 올려두고 옆팀을 불렀습니다. “여기 버튼 감, 어때요?” 다섯 명이 둘러서서 만지고, 고개를 갸웃하고, 웃으며 수정점을 적었습니다. 큰 박수도, 현수막도 없었지만 그들은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죠.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좋은 지원은 조용하다. 좋은 기획은 비로소 사람을 크게 만든다.” 여러분의 가게와 서비스도 그 조용한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한 가지를 덜어내고, 한 가지를 더 가까이 들어보세요. 고객의 우선순위로 세계를 다시 정렬하는 순간, 당신의 비즈니스는 자연스럽게 다음 문을 밀고 들어갈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