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면 습한 바람이 먼저 들어오고, 그 다음엔 낯익은 냄새가 따라온다. 유리 진열장에 갓 튀긴 고로케가 식고 있고, 커피머신은 알람처럼 규칙적으로 소리를 낸다. 아침 장사를 준비하던 사장님은 가격표를 한 장씩 뒤집어 보다가,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다. 밀가루 값도 올랐고, 해바라기유는 도매상에서 품귀라 했다. “이걸 또 올려야 하나…” 그 한숨과 동시에, 지구 반대편 오데사의 항구에서는 곡물을 실은 배가 겨우 움직일 채비를 한다. 뉴스 속 장면은 멀리 있지만, 우리 가게의 원가표에는 실시간으로 찍힌다. 국제정치가 골목상권을 흔드는 시대, 이야기의 시작은 늘 그렇게, 아주 작은 가게의 주방에서 시작된다. 워싱턴에서는 두 장관이 전화로 옥신각신한다. 한쪽은 억류자 교환을 제안하고, 다른 한쪽은 조용한 외교를 강조한다며 말을 아낀다. 이 대화가 당장 우리 가게의 매출을 올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교차하는 압박과 완충, 공개와 비공개의 리듬을 보면 장사를 버티는 방식과 닮은 데가 있다. 손님에게는 환하게 안내하지만, 공급업체와는 부드럽게 가격을 두고 밀당한다. 표면엔 메뉴가 같아도, 뒤에서는 원재료, 납기, 대금 결제 조건이 분 단위로 바뀐다. 외교의 언어로 읽던 뉴스가 어느 순간 장사의 문법으로 번역된다.

“시끄러운 홍보보다 조용한 협상”이라는 태도는 때로 더 큰 결과를 만든다. 카메라는 곧 오데사와 체르노모르스크로 이동한다. 육중한 곡물 사일로와 부두의 선박, 주황색 작업복을 입은 선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흑해에 설정된 항로와 점검 절차, 기뢰의 위치와 통과 신호. 거의 퍼즐과도 같은 이 기계적 합의를 겨우 맞춰가며 첫 배가 움직인다. 바닷바람에 실려 나가는 건 옥수수와 밀뿐 아니라, 전 세계 빵집과 분식집의 ‘내일 할 수 있는 장사’라는 희망도 함께다. 단, 약속은 약속일 뿐, 다음 새벽에 떨어질 미사일이 모든 것을 다시 원점으로 돌릴 수도 있다.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작은 가게의 현금흐름과 꼭 닮았다. 오늘 들어온 매출이 내일의 재고를 보장하지 않고, 해지지 않은 주문은 언제든 취소될 수 있다. 그래서 현실적인 장사는 늘 ‘가능성’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 사이, 유럽 도시의 야경은 조금씩 어두워진다. 바이에른의 한 도시 공무원은 밤마다 어떤 신호등을 끌지, 수영장 수온을 몇 도 내릴지 계산한다. 관광안내소 전광판은 소등되고, 도심의 가로등은 한 칸씩 어둡게 조절된다. 에너지라는 보이지 않는 재고를 아끼는 장면들이다.

유럽의 기차역에서 줄어든 조도는, 한국의 길거리에서 꺼진 간판과 비슷한 논쟁을 부른다. ‘불 꺼진 가게는 장사가 안 된다’는 불문율과 ‘전기요금 고지서가 감당이 안 된다’는 생존의 수학이 맞부딪힌다. 그 사이에서 소상공인은 작은 결정을 반복한다. LED 간판으로 바꾸는 건 투자일까, 지출일까. 타이머를 달아 자정에 자동 소등하면, 충동구매 손님이 줄까, 아니면 전기요금이 먼저 줄까. 한편, 정유회사들의 분기 이익은 기록을 경신한다. 유가가 오르고 정제 마진이 커졌다는 긴 해설은, 결국 우리가 주유소와 배송비에서 맞닥뜨리는 숫자로 요약된다. 더 뜨거워진 건 오븐만이 아니다. 튀김용 기름통, 냉장 쇼케이스, 커피 로스팅 머신까지 모든 전기가 ‘더 비싼’ 전기가 된다. 누군가의 초과 이익은, 누군가의 초과 원가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분노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가게의 문턱 안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손잡이를 먼저 찾는 일이다. 물론 세상의 큰 흐름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 그러나 비용 구조는 비교적 빨리 손댈 수 있고, 공급망은 의외로 ‘사람의 관계’ 하나로 다르게 움직인다. 협상은 테이블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단골 손님과의 대화도, 거래처 담당자의 표정도, 배달기사의 메시지도 모두 협상이며 정보다. 오데사 항에서 겨우 먼저 떠난 곡물선의 항해 계획은 설명부터 복잡하다. 출항 전 점검, 중간 기항지에서의 검사, 안전한 항로 설정, 긴급 대응 절차. 이건 한 식당의 스타 메뉴 출시 계획과도 닮았다. 재료 테스트, 시제품, 내부 시식, 한정 판매, 풀 라인업. 세계가 긴장하는 흑해의 항로에도, 동네 장사가 목숨 거는 저녁 피크 타임에도 공통의 진리가 있다. ‘한 번에 크게’가 아니라 ‘여러 단계로 안전하게’. 원재료가 출렁일 땐 이 접근이 더 빛난다. 딱 한 물류선에 모든 걸 거는 순간, 그 배가 늦으면 가게도 멈춘다. 그래서 작은 가게일수록 ‘두세 갈래의 길’을 평소에 깔아둬야 한다. 밀가루가 흔들리면 쌀가루 레시피를 테스트해두고, 해바라기유가 끊기면 콩기름·카놀라유 블렌드를 미리 배합해 맛의 균형을 찾는다. 어느 날 갑자기 “품절이라서 못 만듭니다”라는 문구 대신, “이번 주는 고소함이 강조된 레시피로 제공됩니다”라는 문장을 붙일 수 있는 준비, 그것이 바로 지속 가능성이다. 안보 뉴스의 냉혹한 문장들은 가끔 한 가게의 존엄을 흔들기도 한다.

미콜라이우의 버스정류장에 떨어진 폭발의 잔해, 포로수용소에서 발생한 의문의 화재, 진실 규명 대신 오가는 상호 비난. 멀리서 보는 우리는 비극을 숫자로 접한다. 그러나 비극의 숫자는 시장의 숫자를 흔들고, 시장의 숫자는 장부의 숫자로 번역된다. 이런 때일수록 가게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내부 언어를 갖고 있어야 한다. 다음 달 매출 전망이 아니라, 다음 주에 어떤 재고가 없을 수 있는지, 어떤 메뉴가 대체 가능한지, 어떤 서비스는 잠깐 멈추고 어떤 서비스는 강화할지. 손님에게는 공지로, 직원에게는 체크리스트로, 협력사에는 메일로 각각 다른 언어로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불안은 통제할 수 없지만, 정보의 투명성은 통제할 수 있다. 어떤 도시는 가로등을 끄며 절약을 배우고, 어떤 기업은 자사주 매입으로 주주를 달랜다. 그 중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가격을 올릴 때의 언어’다. 가격을 올리는 행위는 단순한 숫자 변경이 아니라 신뢰의 시험이다. 갑작스런 1,000원의 인상은 거부감을 부르지만, 장부 속 이유를 이야기로 바꾸면 손님은 이해의 여지를 가진다. 오데사 항의 배가 왜 늦는지, 흑해가 왜 위험한지, 에너지 가격이 왜 오르는지, 그리고 그게 왜 우리 가게의 컵라면 가격에까지 영향을 주는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이 논리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작은 안내문, 계산대 앞의 10초 안내 멘트, SNS의 짧은 글이 생각보다 큰 효과를 낸다.

사람은 가격보다 ‘성의’에 먼저 반응한다. 경영의 손잡이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뉜다. 보이는 손잡이는 전기요금제 변경, 간판 타이머 설치, 냉장고 패킹 최적화, 배달앱 수수료 구조 조정 같은 것들이다. 보이지 않는 손잡이는 관성의 수정이다. 예컨대 오븐을 켜는 시간을 한 번에 몰아 오전·오후로 나누고, 밀폐 용기의 규격을 통일해 유통기한 관리 표를 줄인다. 피크 전 30분, 피크 후 20분에만 커피머신 스팀을 올리고 나머지 시간엔 절전 모드로 두는 습관 같은 것. 이런 사소한 시간표가 모이면 전기요금 고지서가 바뀐다. 때로는 아침 메뉴를 과감히 컷하고 점심·저녁 주력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편성이 더 큰 매출을 만든다. 전기가 비쌀수록 ‘메뉴의 에너지 효율’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등장한다. 같은 5천원을 벌어도 2킬로와트를 쓰는 메뉴와 0.7킬로와트를 쓰는 메뉴의 의미는 다르다. 공급망은 결국 사람의 망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곡물의 항로를 지키는 국제기구의 ‘공동조정센터’ 같은 것이 가게 안에도 필요하다. 매입 담당, 주방, 홀, 배달, 회계가 각자 다른 앱과 수첩을 쓰면, 작은 충격이 큰 혼선이 된다.

가게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주간 단위의 짧은 운영 회의만으로도 망은 훨씬 촘촘해진다. 이번 주 품목별 원가 변동, 다음 주 프로모션, 예상 품절 리스트, 대체 재료의 테스트 결과, 고객 문의의 흐름. 20분이면 충분하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리듬으로 반복하면 직원의 ‘예상 가능성’이 높아지고, 가게의 반응 속도는 빨라진다. 외교의 레이더가 조기경보를 울리듯이, 가게도 미리 알 수 있는 신호를 체계화한다. 돈 얘기는 마지막에 하는 게 보통이지만, 지금은 중간에서 해야 한다. 현금흐름은 홍수 때의 둑과 같다. 마진이 줄면 둑의 높이가 낮아지고, 예상치 못한 지출이 오면 물이 넘는다. 둑을 높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들어오는 물을 넓게 하고, 나가는 물길을 촘촘히 막는다. 전자는 매출원 다각화다. 매장 판매 외에 예약픽업, 동네직배송, 기업간식 납품, 키친공유로의 낮 시간 대여 같은 보조 물길을 만든다. 후자는 결제조건의 재설계다.

공급업체와의 대금 결제를 ‘15일-말일’로 쪼개고, 정기구독 고객에게는 선결제 혜택을 준다. 선결제는 작은 가게의 ‘안정화 펀드’다. 기프트카드, 월 구독 박스, 10회 이용권처럼 미리 돈을 받고 나중에 서비스를 제공하면, 둑의 높이가 즉시 올라간다. 이때 중요한 건 투명한 약관과 환불 원칙이다. 신뢰는 언제나 환불에서 완성된다. 메뉴는 곧 전략이다. 원가 변동이 큰 시대엔 메뉴 수가 많을수록 리스크도 늘어난다. 메뉴를 줄인다는 건 선택지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변수의 개수를 줄이는 일이다. 핵심 SKU를 5개로 압축하고 나머지는 계절·이벤트로 돌린다. 고정 메뉴는 재고와 에너지 효율이 좋은 것들로 구성하고, 변동 메뉴는 시장의 상황과 스토리를 실어 시대의 사연을 담는다. 해바라기유가 비싸진 주에는 ‘구운’ 메뉴가 주인공이 되고, 옥수수가 바다를 건너오는 주에는 ‘옥수수’가 테마가 된다. 손님은 이유 있는 변화를 좋아한다. 변화를 느끼되 당황하지 않게, 스토리가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마케팅은 값비싼 광고비 없이 가능하다. 상상해보자. 계산대 앞 작은 포스터에 오데사 항의 흑백 사진이 있고, 그 아래 이렇게 적혀 있다. “저 바다를 건너오는 밀과 옥수수의 안부를 기다리며, 이번 주 우리의 빵은 조금 더 고소합니다.” SNS에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간판 소등 시간을 미리 공지하고, 그 시간대에는 초코쿠키 두 개를 한 개 값에 드린다는 작은 이벤트를 연다. 절약은 손해가 아니라 설계임을 손님과 함께 증명한다. 그리고 장사꾼의 유머를 잃지 않는다. “불은 잠깐 꺼도, 맛은 절대 안 꺼집니다.” 이런 문장은 위기 때 가게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버티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날은 전쟁 뉴스가, 어느 날은 국제 유가가, 어느 날은 환율이 우리를 흔든다. 하지만 작은 가게의 강점은 크고 무거운 조직이 할 수 없는 민첩함에 있다. 오늘 밤에 결정을 내리고 내일 아침에 바꾸는 능력, 골목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언어, 단골의 표정을 보고 메뉴를 조정하는 감각. 그러니 국제정치의 무게에 눌려 주저앉기 전에, 우리가 당장 바꿀 수 있는 세 가지를 정한다. 전기 사용 표를 다시 쓰고, 공급업체와 ‘조용한 외교’를 시작하고, 가격 인상 안내문의 문장을 다듬는다.
작지만 실질적인 조정이 쌓이면 불확실성도 통제 가능한 변수로 바뀐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비 오는 날, 상점 앞 처마 밑에 사람들이 잠시 모여 선다. 서로 모르는 얼굴이지만, 잠깐의 비를 함께 피한다. 국제정치의 장대비는 오래오래 내릴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가게의 처마 밑은 언제나 따뜻해야 한다. 손님이 들어와서 묻는다. “요즘 많이 힘드시죠?” 그때 우리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래도요, 이번 주에는 이걸 새로 해봤어요.” 그러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장사는 다시 오늘을 맞는다. 당신의 이번 주는 무엇으로 시작할 것인가. 간판에 타이머를 달아도 좋고, 메뉴의 에너지 효율을 재정렬해도 좋다. 아니면 계산대 앞 작은 안내문 한 장이면 더 좋다. 멀리 흑해에서 출항한 첫 배처럼, 작지만 분명한 움직임 하나가 당신 가게의 바다를 바꿔놓을지 모른다.